내가 원하는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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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세훈. PR agency 컴일공일 이사/前 중앙일보 기자
평생 ‘몰입’을 연구했던 미국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81) 교수는 사람은 몰입할 때 행복을 느끼고 성장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몰입이란 고도로 집중을 유지하면서 지금 하는 일을 충분히 즐기는 상태라 정의했고요. 운동 경기를 할 때, 무대에서 연기하거나 노래를 부를 때,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을 때 등의 시기에 몰입이 잘 이뤄진다고 했습니다. 칙센트미하이는 미국 시카코 대학에서 40년 간 심리학 교수를 했고, ‘몰입’, ‘몰입의 경영’, ‘몰입의 즐거움’ 등의 역작을 냈습니다. 그는 몰입하면 행복해지고 그래서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생각의 전도사입니다.

그가 몰입의 사례로 든, 책을 읽을 때의 몰입은 다수가 경험했을 것입니다. 70년대 고등학교를 다닌 저는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친 뒤 도서관 문을 나설 때의 만족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밤 11시 정도까지 집중해서 공부한 날은 몸에 시원한 물이 흐르듯 상쾌하고, 걸음걸이는 천천히 나는 듯한 느낌이었고, 심리적으로는 뿌듯한 기운으로 가득 채워지는 듯했습니다.

제주에서도 도서관을 매우 유용하게 만나고 있습니다. 정착한 2년 동안 7~8곳의 도서관을 방문해서 귀중한 시간을 보냈고, 또 몇몇 도서관에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몰입의 즐거움까지 얻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고교시절의 몰입은 이제는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나이 탓도 있겠고, 또 눈앞의 목표가 확고하지 않기 때문인 탓도 있겠지요.(몰입의 조건 중 하나는 확고한 목표나 과제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 차이를 고려해도 제주 도서관에는 저의 집중을 방해하는 요인들이 많습니다. 그중 가장 힘든 것이 소음입니다. 도서관 이용자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근무자들도 도서관 내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바람에 집중을 방해합니다. 근무자들이 열람실 밖에서 얘기하거나 전화 통화하는 것은 애교로 받아들일 만합니다. 심지어 열람실에서 아무렇지 않게 거슬리는 대화를 하는 경우도 종종 봤습니다.

그러니 이용자들은 더욱 조심성이 없습니다. 열람실 안에서 대화는 물론이고 가방이나 소지품을 큰 소리로 내려놓거나 지속적으로 달그락거리는 등 신경을 쓰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면 손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할 수도 있으나, 그 이상 사람들에게는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도서관은 공공건물이고, 특히 몰입해야 하는 공간이란 인식이 별로 없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수용하기 어려운 소음으로 인해 몰입은 어렵습니다. 집중해서 책을 보거나 생각에 잠겨 있다가 소음이 들리면 맥이 끊깁니다. 다시 집중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그게 몇 번 반복되면 그때부터 안정된 상태는 물건너 간 겁니다. 아예 언제 또 소음이 들릴까에 촉각을 세우는 자신을 발견하기 쉽습니다.

제주도정은 핵심 시책으로 친절, 질서, 청결을 내세우며 여기저기서 결의대회를 해왔습니다. 또 기회 있을 때마다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문화의 최첨단이며 보루 중 하나가 도서관입니다. 그런데 문화의 중요성과 생활 속 실천은 아직 도서관까지 확산되지 않은 듯 보입니다.

문화는 한꺼번에 성장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단계를 높이기가 어렵습니다. 겨레의 스승 백범 선생이 가장 이루고 싶다 하신 것도 높은 문화 수준입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정숙하는 것만으로도 나와 남에게 행복을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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