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와 '제주일보호'와 '타이타닉호'
'세월호'와 '제주일보호'와 '타이타닉호'
  • 제주신보
  • 승인 2015.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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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영 편집부국장대우
지난해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승객 300여 명이 사망, 실종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세월호’ 선장은 자기만 살겠다며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했다가 온 국민의 공분을 샀고, 법의 심판을 받았다.

‘세월호’ 선장이 법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분노보다는 도덕 의식과 윤리 실종이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슬픔이 밀려왔다.

‘세월호’ 참사 이전인 2012년 12월 10일.

1945년 창간돼 굴곡의 역사를 이겨내며 도민과 독자들의 사랑으로 항해하던 ‘제주일보호’가 최종 부도 처리돼 침몰한 날이다.

부도 당시 ‘제주일보호’의 채무액은 200억원대가 훨씬 넘었고 그 중에는 50억원이 넘는 체납 세금(국세와 지방세)도 있었다.

직원들은 2개월치의 월급이 밀리고 단 한 푼의 퇴직금도 받지 못해 체불임금도 14억원에 달했다.

신제주 연동 사옥을 300억원대에 매각한 후 1년 만에 빚어진 일이다.

새로 이전했던 애월읍 광령 사옥과 인쇄공장은 경매로 제3자에게 넘어갔고, ‘제주일보호’에 탑승했던 직원들은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상황까지 몰렸다.

설상가상으로 제주일보 상표권도 체납 세금과 채무 등으로 여기저기서 압류가 됐다.

침몰한 ‘제주일보호’의 선장이었던 김대성 전(前) 회장은 120억원대의 회삿돈 횡령과 사기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을 확정 받았다.

선장이라는 사람이 도민과 독자들에 대한 죄책감도 없이, 길거리로 나앉게 된 직원들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도 없이, ‘제주일보호’가 어찌되든 상관없이 떠났다.

하지만 ‘제주일보호’에 탑승했던 직원들은 대한민국 광복 이후 도민과 함께 제주의 역사를 기록해온 ‘제주일보호’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뭉쳐 비상대책위를 구성하고 침몰한 ‘제주일보호’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다행히 새로운 투자자를 만나 현재의 태성로 사옥에 둥지를 틀고 경영 정상화와 함께 언론으로서의 올바른 길을 걷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다.

이후 3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 김 전 회장의 친동생인 김대형 제주상공회의소 회장이 경매에 뛰어들어 9억원에 상표권을 낙찰 받았고, ㈜제주일보방송이라는 법인을 설립해 제주일보 제호로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침몰한 ‘제주일보호’를 가까스로 살려냈지만 ‘제주일보호’가 김 전 회장 일가의 것이라며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구사일생한 ‘제주일보호’는 더 이상 누구의 것이 아니라 도민과 독자들의 것이라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1997년부터 ‘제주일보호’가 침몰하기 전인 2012년까지 김대성 전 회장은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이사장을 지냈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전국의 일간신문과 통신으로 하여금 신문윤리강령과 그 실천요강을 준수하게 함으로써 언론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설립된 단체다.

신문윤리 단체의 선장이던 김 전 회장은 최소한의 윤리마저 저버린 채 횡령과 사기를 일삼았던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의 기본을 바닥까지 보여 준 사례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 우리 사회는 가진 사람들의 도덕 의식이 약하고 사회 전반적으로 윤리가 실종됐다고 지적한다.

‘세월호’ 사태와 ‘제주일보호’ 사태를 보면서 103년 전 벌어진 ‘타이타닉호’ 침몰이 떠오른다.

‘타이타닉호’ 선장이었던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은 이성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승객들에게 공포탄까지 쏘며 질서를 유지시켰고 스스로 배와 함께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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