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名分)을 잃은 제주신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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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혁. 시인·문화비평가
   
명분(名分)이 없는 싸움은 진다. 자로가 공자에게 제일 먼저 할 일이 무엇인지를 묻자 공자는 “반드시 이름을 바로 세우겠다.”라고 답했다.

이름을 바로 세움, 곧 명분(名分)을 세운다는 것이다.

공자는 덧붙여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이치에 맞지 않고, 말이 이치에 맞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라고 했다.

명(名)은 누구네 아들 개똥이, 누구네 엄마 순이 등 선천적이며 천부적인 것을 가리킨다.

분(分)은 분수(分數)요 직분(職分)으로, 대통령은 대통령의 직분, 국회의원은 국회의원의 직분, 도지사는 도지사의 직분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직분은 달라지는 것이다. 이놈의 ‘명분’이 바르지 않다면 일을 성사시키기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제주신공항 건설과 관련해 원희룡 지사가 이끄는 제주도정의 모습은 여러 부분에서 명분을 잃고 있는 게 사실이다.

‘에어시티’를 건설하면서 성산읍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하는 게 우선이라느니, 보상을 잘 해 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느니 하는 원 지사의 설득에 성산읍 지역주민들이 정색을 하고 덤벼드는 형국이다.

과연 원 지사와 용역 담당자들이 신공항 건설에 한 치의 사리사욕도 없이 신공항 건설 계획을 세웠는데도 그렇게 반기를 드는 것일까?

원 지사는 계획 발표 후에 계속 말했다.

주민들이 단순히 희생만 하는 게 아니라 개발과정이나 이후의 경제적 혜택을 최대한 주민들에게 환원하겠다고. 그리고 국토교통부와 용역 담당자는 보상비가 싸서 성산읍을 선택했으며, 정석비행장과 비행 구역이 중첩되어 ‘온평 내륙형’으로 부지를 옮겼다고도 했다.

그런데 용역 책임자가 정석비행장을 소유한 대한항공에서 세운 재단에서 월급을 받는 사람이고, 이전의 한 시사프로그램 인터뷰에서는 “공역 중첩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며 “공역 재조정을 통해 풀 수 있다”라고 했다.

결국, 지금의 부지를 선정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는 것이다.

‘신산 해안형’을 했을 때 공역에 속하는 지역이, 내륙형으로 바뀌면 이득을 볼 수 있는 집단이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신산 해안형’ 공역에는 대한항공과 보광그룹이 있다고 한다.

원 지사는 환경 문제 때문에 제주시공항 확장 계획을 접고 성산읍을 선정했다고 했다.

그런데 원 지사와 용역 팀이 일을 서둘다 보니 놓친 것이 있다.

세계 7번째, 한국에서 3번째로 긴 용암동굴인 수산동굴, 그리고 성산읍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동굴들이다.

제주도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은 대한지질학회에 의뢰해 ‘성산읍 수산동굴’을 비롯한 4곳을 세계자연유산 등재 신청 후보군으로 선정했다고 12월 9일 발표했다.

활주로와 에어시티를 건설하며 성산읍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은 파괴될 것이고, 그 가운데는 세계적 자연 유산인 ‘수산동굴’이 포함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원 지사는 주민들의 의견이 공항 후속 계획에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들어야 한다. 그리고 문제가 있으면 타협하고 조정해야 한다. 현 상황에서 원 지사나 용역 담당자들의 명분은 사라져가고 있다.

결코 서두르지 말 것이며, 씨알도 안 먹히는 명분으로 시민들을 속이려 해서는 절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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