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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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형. 제주펜클럽회장
30년을 살았던 집을 떠나 이사를 했다. 환경을 바꾸면 그동안 글쓰기의 게으름을 털어내고 좀 더 좋은 글, 많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용기를 냈다. 냉·난방이 시원치 않은 집이라 더위와 추위를 핑계로 서재를 이용하는 시간이 짧아졌고, 그래서 창작에 대한 열정 또한 식어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40년 동안 수집했던 책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넓은 서재를 채웠던 책을 수용할 공간이 없었다. 내가 산 책, 문학인 동료들이 보내준 책, 제주향토 관련 서적, 교육학 서적들 등 자식 같았던 책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난감했다.

탐라장애인복지관 도서관에 책이 없다는 방송을 보고 시집을 모아 이미 보냈고, 일부 잡지들을 폐지 수집업자에게 넘겼다. 그런데도 책들은 여전히 성벽처럼 서재를 포위해서 어쩔 수 없이 심장 한쪽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으며 절반을 덜어낸 후 이사를 감행하고 보니 나의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책장으로 안착하지 못한 책들이 컨테이너 안에서 불편한 눈길로 누워있다. 또 어떤 책들을 밀어낼 것인가?

책을 버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읽은 책이니 책의 사명을 다했고 폐기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자식처럼 아끼던 책을 치우는 일은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버리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다. 오래된 물건도 함부로 버리지 않아 집안이 항상 구질구질한 것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책을 버리면서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매일 대장을 거친 음식물을 배설하고 있음에도 버리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갖는 욕망은 식욕, 성욕, 명예욕이라 하지만 소유욕 또한 이에 못지않다. 부자가 더 부자가 되고 싶어 하거나 농부가 밭을, 목자가 소나 말을 더 많이 갖고 싶어하듯이 소유욕은 자본주의의 근간이고, 문명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많이 소유해서 스스로 감옥을 만들어 갇혀 지내는 수가 있고,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한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 분에 넘치게 소유한 것들이 자신을 망친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들을 소유하기 위하여 범죄행위까지 넘나든다.

요즘 언론을 통해 정치가, 사업가, 심지어는 노동자들까지도 가지고 있는 걸 내려놓지 않고 더 가지려고 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혁신이나 협동, 배려, 화합이니 하는 말은 귓등으로 넘기고 오로지 자신이 가진 것들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걸 보면서 버림의 미덕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 특히 정치가들의 언행불일치는 국민을 도탄으로 몰아넣고 있다. 국민은 안중에 없이 당리당략으로 많은 국민들을 울화병으로 시달리게 하고, ‘5포 시대’를 지나 ‘7포 시대’로 젊은이들을 내몰고 있기도 하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철옹성을 쌓는 그들을 국민들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총선을 눈 앞에 두고 국가의 정책이나 일자리 창출 등은 뒷전이고 지역구 지키기에 골몰하는 선량들을 보면서 이들의 안중에 국민은 있기나 한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일본에 밀리고, 중국에 치여 허덕거리는 한국경제가 재도약하는 해가 되기를 바라며 국민의 행복이나 사회의 통합, 국가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아집이나 욕심을 버리고 새해를 맞이했으면 좋겠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크지만 희망을 가지고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깨끗이 비우는 일들이 일어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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