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척의 배와 두 마리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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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열. 아동문학가/전 서귀포교육지원청 교육장
   
40여 년의 긴 공직의 여정을 마쳤다. 4개월이 다 돼간다. 누구나 묻는다. 어떠냐고. 답하기 전에 그들이 먼저 답을 준다. 놀아보니 좋지. 뭔가는 해야 폭삭 늙지 않는데. 나도 헷갈린다. 놀아보니 좋은 건지 할 일이 없으니 허송세월하는 건지. 아직도 철이 덜 들어 그런지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는 떠나온 그 시절의 많은 추억들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지금은 그 기분을 좀 더 느끼고 싶다. 느리게 더 느리게 살고 싶다. 미래는 낼쯤 생각해 보기로 하자.

되돌아보니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뀔 시간이다. 인간사 크고 작은 일들로 가득했는데도 가슴이 벅차오름은 잊을 수 없는 수많은 인간관계들 때문이다. 요즘 들어 문득 문득 생각이 난다. 주마등처럼 스쳐간다는 느낌을 이제야 제대로 그리고 확실히 알 것 같다. 나도 그들에게 늘 가까이 갔고 그들도 날 멀리 두지 않았다. 지금도 부르면 무조건이다. 내 인생의 40년은 함께한 모든 관계들로 씨줄이 되고 날줄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감사하고 고맙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각오나 결기를 보이기 위해 이순신 장군의 아직도 남아 있는 12척의 배를 종종 언급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는 틀림없으니 대한민국의 최고 지도자가 되겠다고 호소하는 것이다. 주장이니 일단은 믿어보자. 상상만 해도 환상적이고 웅장하지 않는가. 그런데 인생에는 일곱 척의 배(ship)가 필요하다고 한다. 전쟁에서는 많을수록 좋지만 인생에는 최소한 숫자다. 멤버십, 우정의 프렌드십, 업무의 주도성인 오너십, 충성심인 팔로우십, 스포츠맨십, 파트너십, 그리고 리더십이다. 책장을 한 번만이라도 넘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입에 올렸을 말이다. 아 그거. 회식 자리. 술잔이 한 바퀴 돌고 나면 일곱 척의 배의 순서를 정하려고도 한다. 책장을 많이 넘긴 사람일수록 무게를 잡고 사실과 근거를 들면서 논쟁은 흐지부지 되고 그쪽으로 귀결이 된다. 맞는 말일까. 이순신 장군의 승리는 12척의 배 때문인가. 장군님을 믿고 따라야 했던 사즉생의 통합 리더십이었는가. 논쟁의 승복함은 언제나 무리에서 탈출하여 혼자일 때만 한다. 그게 아닌데.

마케팅 전략가 잭 트라우트와 알 리스는 성공에 이르는 유일하고 가장 확실한 길은 자신을 성공으로 태워 줄 좋은 말을 찾는 것이라 했다. 또 ‘성공이란 스스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선사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말은 인생에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감사와 겸손을 내포한 참으로 명쾌한 해석이다. 두 마리의 말. 그건 나를 성공으로 이끌어 줄 ‘타인 마’와 함께 달릴 수 있는 ‘파트너 마’인 것이다. 요즘 부자 아버지를 둔 거지 없다는 금수저, 개천에 용 안 난다는 흙수저하며 탯줄 스펙이 회자되고 있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면 틀을 바꾸면 될 것이고 정책적인 문제라면 정책 보완 또는 수정을 하면 될 것 같은데 ‘너 때문이야’만 외치고 있다. 오죽했으면 유명 코미디 프로그램에 컵라면 먹다가 뜨거운 물을 돈 내고 먹으라는 말에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합창을 하겠는가. 내년 2월이면 졸업시즌이고 입학·입사 시즌이다. 인간관계가 답이라는 생각으로 나를 성공으로 이끌어 줄 ‘타인 마’와 함께 달릴 수 있는 ‘파트너 마’를 잘 골랐으면 좋겠다.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퇴직한 후 나에게 또 나에게 의식화하는 말이다. 겸손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적 인간들은 내년에는 일곱 척의 배와 두 마리의 말을 잘 선택했으면 좋겠다. 내일은 나의 미래를 새롭게 설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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