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선약수(上善若水)
상선약수(上善若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김길웅. 칼럼니스트
   
#1.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행복하다’였다. 나는 내 능력에 맞춰 즐기면서 꿈을 향해 걸었다. 몸은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쩔쩔맸지만 내 머리, 내 가슴은 사람과 세상과 우주를 향해 활짝 열리는 느낌이었다. 사하라에서 맛본 희열은 영원히 내 가슴에 남을 것이다. 아직 그에 견줄 기쁨은 없었다.”

사하라사막! 메마름과 고통의 상징이다. 게다가 그곳에서의 마라톤은 더할 수 없는 고통이다. 그러나 그 고통의 극한 속에 행복과 희열이 샘솟는다. 고통을 모르면 행복이 행복인 줄도 모르는 법.

#2. 아내에게 삐친 남편이 시위하기 위해 말도 없이 가출해 혼자 이러구러 속 끓이다 새벽녘에야 슬그머니 집에 들어왔다. 거실에서 이제저제 아내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데, 안방 문을 열고 나온 아내의 첫 마디, 까무러칠 뻔했다.

“당신, 또 TV 보다 거기서 잔거야?” 애초에 자신이 집을 나갔다 온 사실조차 까맣게 몰랐던 것.

살다 보면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지금 내가 무얼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아무도 모른다는 느낌, 어느 누구도 내 존재에 관심하지 않는다는 느낌은 사람을 충분히 낙담케 한다. 상처 받았을 땐 더욱 그렇다.

그럴 때, 상처 받은 마음을 다독이고 충전해 주기 위해 주위에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쪽이다. 툰드라 사람들은 그런 것을 아예 법칙으로 정해 놓았다 한다.

극한(極寒)의 땅 툰드라에서 살아남기 위한 법칙의 첫 번째는 ‘조난’당한 사람은 누구든지, 설령 그게 어지간도 않은 평소 불구대천지 원수라 하더라도 무조건 도와야 하는 것. 나도 언제든 그런 위험에 처할 수 있고, 그럴 경우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툰드라에서 조난자를 돕는다는 것은 결국 나를 보호하는 가장 확실한 생존법이다. 그러므로 심리적으로 ‘툰드라 상태’에 있는 내 주위의 누군가를 다독이고 충전해 주는 일은 나를 보호하는 일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사회라는 공동체, 사람이 모여 사는 것은 원래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는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세파를 헤치며 살고 있다.

#3. 집에서 만들면 눈 온 날, 거리의 포장마차에서 같은 어묵 맛이 나지 않는다는 데 공감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그게 단순히 기분이나 분위기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요리 전문가에 의하면, 결정적 이유는 ‘시간’에 있단다. 어묵은 은근한 불에 오래 익혀야 제 맛이 나는데, 집에서는 30분이면 먹을 수 있도록 센 불에 빨리빨리 익히니까 그 맛이 안 난다는 것이다.

때로 시간이라는 변수는, 다른 모든 요소를 꼼짝 못하게 강력하고 결정적일 수 있다. 아침이 되지 않았는데 수련(睡蓮)이 깨어나게 하는 묘수, 절대 없다.

아직 때가 아닌 일에 닦달하고 조바심 내는 것, 않는 게 좋다. 무릎 꺾고 주저앉거나 생채기 내거나 않고 아직 때가 아니거니 느긋하면 된다.

독자들이여! #1,2,3을 한 맥락으로 읽어 보시라 권하고 싶다. ‘물’의 속성을 잊지 않았으면 해서다. ‘고군분투→지역 분위기→기다림’, 본래 물의 흐름이 이렇다. ‘도덕경’에서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했다. ‘최상의 선(善)은 물과 같다’ 함이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고도 공을 다툼이 없다. 가령 바위가 막아서면 비껴 흐르고, 흐름을 막으면 멈췄다 다시 흐른다. 그게 물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