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받아들이려는 성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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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요즘은 좀 뜸한 편인데, 징기스칸에 대한 영화가 여러 나라에서 여러 편 만들어졌다. 영화들마다 초점과 관심이 조금씩 달랐는데, 언젠가 중국에서 만든 영화는 이런 점을 부각시켰다.

젊은 시절 힘이 미약했을 때 다른 부족의 침략을 받아서 징기스칸이 아내를 빼앗긴 적이 있었다. 이후에 힘을 길러 일년 정도 후에는 징기스칸이 그 부족을 공격했고 아내를 되찾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의 아내는 적장의 아이를 잉태하고 있었다. 적에게 잡혀가서 일 년이 넘었는데 아내의 윤리도덕을 따질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적장(敵將)의 아이를 잉태했다는 점은 그냥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문제였다.

원수를 갚았고 아내를 되찾긴 했는데, 이 아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그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래서 아내를 자기 부족 안으로 받아들이진 않고, 일단 들판 저 쪽에 머물게 했다.

하루, 이틀, 사흘이 흘러 그의 어머니가 찾아와 이런 말을 했다. “넓은 마음으로 너의 아내를 받아들여라. 그래야 그 마음으로 몽고 대초원을 통일하지 않겠는가?” 어머니의 말대로 징기스칸은 아내를 받아들였다. 받아들이는 남편과 받아들여지는 아내. 그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그렇게 받아들인 후에, 징기스칸은 몽고 대초원을 통일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 전반은 오래 전부터 서로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분위기 속에 살아왔다. 해방 후 친일파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문제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왔다. 그런데 친일을 했다 해도 다 쫓아버릴 수는 없으니까, 어느만큼은 배격하고 또 어느 선에서는 받아들이자는 구체적인 이야기는 거의 들을 수 없었다. 좌우 문제에 있어서도 비슷하다. 서로를 정죄하고 공격하는 이야기는 많았어도, 서로를 받아들이기 위한 구체적인 논의는 거의 없었다고 생각된다.

설령 친일을 했다 해도, 심한 좌파였다 해도, 심한 우파였다 해도, 그들의 아들, 손자, 며느리, 사돈까지 계속 그런 방식으로 취급해야 할 것인지? 우리는 서로를 현해탄 밖으로, 38선 너머로 쫓아내려고만 하고 있지 않은지? 그들을 내쫓았을 때 그들이 적장에게로 돌아가 그들과 함께 잘 살 수 있다면 내쫓는 문제도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데 친일파의 후손이라 해서 바다 밖으로 몰아내면 그들은 일본으로 가려할 것인가? 우리의 좌파는 북(北)과는 좀 다른 우리들만의 좌파가 아닌가? 우리의 우파도 우리들에게만 있는 복합적인 우파가 아닌가? 징기스칸이 아내를 받아들일 때, 그는 아내의 몸속에 있는 적장의 생명까지도 받아들였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참회가 없었다 해도 어차피 이웃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면 아내와 함께 적장의 생명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적장의 생명을 낳고 키워가는 것은 아주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이다. 그걸 알면서도 받아들였기에 징기스칸이라 하지 않는가? 어렵더라도 서로를 받아들이려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세계사의 냉전이 한반도에서 국지적 파국으로 나타난 것이 한국전쟁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에게서 나타난 좌우의 문제는 우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사의 고통스러운 열매라고 볼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우리끼리 너무 적대시하지는 말자. 설령 좌는 좌대로 우는 우대로 그냥 거기 머물려 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래도 서로를 받아들이려고 하자. 그 앞에서 기다리다 보면 마음이 열리고 또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날도 올테니까.

‘그렇게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품자’는 제안을 2015년 성탄 전야의 메시지로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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