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성적 레저가 횡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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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여가연구에는 ‘레저(leisure)’라는 말을 안 쓰는 편이다. 우리말 ‘여가(餘暇)’라 하면 한가함, 짬, 여유로움 등으로 때묻지 않은 순수한 컨셉트와 형식이 아닌 목적적 의미가 담겨져 있는 데 반해 ‘레저’라 하면 소비적, 돈 때묻은, 형식과 수단적 의미의 뉘앙스로 다가와 정치적, 경제적, 상업적 전유물격으로 생각하는 선입관에서인지 모른다.

여가는 건강, 지식을 창출하고 삶의 가치, 보람, 행복추구의 원동력이라는 점에서 현대 여가의 아버지 뒤마즈디에(J.Dumazedier)는 여가를 휴식, 기분전환, 자기계발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여가를 통하여 레크리에이션적 자기의 회복, 발견, 창출, 발전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정의로 해석되기 위해서는 여가의 시간적 조건, 활동적 조건, 의식 규범적 조건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들은 그러한 여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필수적이면서도 수단, 도구, 형식의 틀로 갖춰져야 할 매개적 실체가 되고 있다.

이는 주체자인 ‘의식(마음.욕구)’ 속에 ‘시간’과 ‘활동’으로서 여가행위를 수행해야 하는 것으로 여행이나 골프, 게임, 오락 등을 하려면 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어떤 활동을 얼마의 시간 동안 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여가에서 시간, 활동, 의식은 필수적 보따리이다.

그러나 개인, 집단 할 것 없이 그러한 ‘여가보따리’를 스스로 풀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서 이를 대신 챙겨주는 매개자가 등장하게 된다.

이른바 여가매개자는 여가를 원하는 자의 여가목적을 달성하도록 해주는 여가생산자이자 여가문화창출의 선도자들이다. 분명 이들은 인본주의와 생활자 지향의 공중이익을 도모하는 선봉자들로서 정부, 정치가, 교육.지도자, 기업, 매스컴, 관련사회단체 등이라 할 수 있다.

현대인은 여가의 소중함을 안다. 한국도 ‘삶의 의미’를 ‘일.노동’이 아니라 ‘놂.여가’로 바뀌고 있다. 한국의 여가는 그럴 듯한 역사.문화.제도도, 교육활동도 없었다. 그것은 일제하 식민지 등의 어둠 속에서 근대사의 상실, 문화공동(空洞)상태와 ‘일의 미덕’인 전통관념에 의해서까지 지금껏 여가.정신문화의 현대화 진전을 더디게 했다.

그런데 최근 갑자기 ‘주 5일 근무제’가 부상하고 정부, 노사의 쟁점으로까지 물의의 대상이 되었다. 필자는 IMF(국제통화가금)관리체제 정황 속에 이것이 꼭 주어져야 했는지 아직도 답을 잃는다. 그 후로 용트림인양 금강산관광 개통, 정선 국민카지노 개장, 로또복권 발행이 터졌고 동시상영이나 되는 듯 월드컵 신드롬과 함께 미증유의 레저 붐을 가져왔다.

그런 중에 청소년은 물론 어린이용 이동전화, 화장품, 현금카드, 명품외제품 사기, 그리고 인터넷의 성인포르노, 사이버머니, 복권사기, 채팅과 미팅, 오락, 게임 등 ‘아이들의 천국’이면서 불량아 양산에 빠져들고 있고 성인들도 도박성 사행만연으로 갈팡질팡 무규제(anomie)상태를 낳고 있다. 이렇게 보면, 여가매개자들 일부가 외환위기 극복의 공로자이기는커녕 국민상업화 여가 조장과 반여가(anti-leisure)상태의 주역들이 아닌가 한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2002년 경마, 경륜, 경정, 카지노, 복권 등 사행산업이 2000년에 비해 거의 두 배로 성장했고 전체 레저시장(27조1000억원)에 차지하는 비중도 12조2000억원 이상(45.1%)으로 두 배에 가까운 상승세에 있다 한다. 지난 15일 로또복권 추첨 전날 복권이 2600억원어치 팔려 나가자 김석수 국무총리가 앞으로 순식간에 몇조억 원 시장이 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수익금 일부를 남북교류협력기금으로 사용한다는 방안을 말한 바 있다.

며칠 전 모 국회의원이 로또복권열풍과 함께 “우리나라 헌법 제1조가 ‘대한민국은 로또복권공화국’이라고 바뀔 지경”이라고 하였다. 금강산으로 가야만 하는 육로관광이 왜 이리 어설픈지 모르겠다. 이래 저래서 나는 레저가 싫고 여가가 좋은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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