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누리공원에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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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겨울인데 봄 날씨처럼 화창하다. 어승생 한울누리공원을 오르는 바람이 훈훈한 미풍이다. 다사로운 햇볕이 고인의 표지석 위에서 반짝반짝 빛난다. 어느새 혈연이나 지인들이 하나 둘 곁을 떠나고 있다. 자식들의 혼사로 축하인사 다니느라 바빴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당사자의 부음이라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형제처럼 정을 나누던 분을 보내드리고,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보게 되는 시점에 숙연하다. 가슴 한쪽으로 삭막한 발걸음이 뚜벅뚜벅 걸어오는 듯 허허롭다.

생전에 반면식도 없던 이들이 저승에서 새 인연으로 이웃이 되는 곳, 고단했던 삶을 부려놓은 영원한 안식의 자리. 이곳에선 셋방살이 시름 깊었던 일이나 큰 집 작은 집 비교하며 마음 상할 일 따윈 없을 거다. 빈자도 부귀영화를 누렸거나 권력을 휘두르며 한 세상 풍미했던 사람도 너나없이 평등하다.

화장한 유골을 나무나 화초, 잔디 밑에 묻는 시설로 혐오감이 전혀 들지 않는다. 소풍 가듯 가족들과 고인을 만나러 와도 좋은, 멀리 북쪽 바다를 품은 확 트인 시야가 시원해 좋다. 생전에 이런 곳에 거처를 마련하기란 쉽지 않았으리라.

제주시에서 잔디며 나무의 수형을 관리해 주므로 유족들이 전혀 신경 쓸 일이 없다. 장례비용을 줄이고 무엇보다 후손들이 관리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 가장 좋은 점으로 꼽는다. 도민은 물론, 도외인도 이용을 할 수 있다니, 살고 싶어 찾아오는 제주가 죽어서도 오고 싶은 섬이 됐다. 좁은 땅에서 토지의 효율적인 이용이라는 점에도 반가운 일이다. 앞으로 이용률이 큰 폭으로 증가할 것이란다.

예전에 비해 장례식이 여러 모로 간소화 되고 있다.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 인사를 소홀히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복잡한 치레가 고인을 위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

죽음 앞에서 모든 생물은 별다를 것 없다. 엄숙하되 검소한 예식이 됐으면 한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갈 것인데 죽은 후 거창한 집이 과연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적으로 장묘 문화가 화장 문화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나이 들면 다가올 일을 미리 유언으로 준비해 두어야 할 것 같다. 현실은 전향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 변한다. 지켜야 할 풍습도 중요하나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차후 세대의 앞날은 바쁘게 살 수밖에 없는, 핵가족 시대에 물려받을 자손들이 귀하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물려 줄 수 없다는 얘기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어른들이 나서 짐을 덜어주길 바라는 젊은이들이 많다.

몇 년 전에 이어 최근 전직 대통령 두 분의 장례식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오갔다. 풍수지리에 매달렸다. 한 나라를 통치했던 국가 원수 장례인데 아쉬움이 남았다. 화장해서 잔디 아래 묻혔더라면 국민들에게 더 존경 받는 분으로 기억되지 않았을까.

현충원에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영령들이 잠들고 있는 곳이다. 어느 장군은 장군의 묘역 자리를 마다하고 함께 나라를 지켰던 병사들 곁에 묻히는 걸 보며 가슴이 울컥했었다. 진정 부하를 사랑하는 영원한 군인이며 애국자란 생각에. 앞으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먼저 모범을 보여 준다면 사회도 많은 호응을 얻으리라.

돌아오는 길, 함께 한 조문객은 어디쯤 자신의 집을 갖게 될까 몇 번을 돌아본다.

잔디를 이불삼아 소박하게 잠들고 싶은 소망, 가위 눌린 듯 무거운 집이 필요치 않다는 얘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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