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 덕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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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원숭이는 가장 사람다운 동물이다. 생김새야 ‘몽상’이니 그렇다 치고 두 다리로 직립하는 게 특히 그렇다. 지능도 인간에 가깝다. 숲속에서 몇 백 마리 우르르 군집을 이뤄 사는 것도 사람의 사회생활을 방불케 한다.

예전,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 나들이 중에 창경궁 동물원에서 원숭이 우리 앞에 오랜 시간 멈춰 섰던 기억을 떠올린다. 볕 잘 드는 오후였다. 어미가 새끼를 앞으로 바짝 끌어 당겨 어루만지다 털을 헤치며 이를 잡아 주고 있었다. 잡는 족족 손톱에 얹어 꾹꾹 눌러 죽인다. 사람이 하는 모습 그대로다. 비단 어미와 새끼만이 아니었다. 상대의 털을 손질해 주는 짓으로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 간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저들끼리 우애롭게 지내는 게 썩 좋아 보였다.

어릴 적 어머니가 누이의 머리를 참빗으로 빗어 서캐를 뽑다가, 손으로 머리를 샅샅이 뒤져 이(?) 를 두 엄지손톱에 놓아 눌러대던 장면과 겹쳤다. 영락없는 사람의 행위라 실실 웃음이 나오는데, 우리 아이들도 신기한지 홀려 있었다.

원숭이는 12지 가운데 ‘申’으로, 가축이 아니면서도 사람에게 친근한 짐승이다. 어린 시절에 ‘원숭이는 빨개’라는 동요가 있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은 건 백두산…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 무궁화 이 강산에 역사 반만년/ 대대로 이어 사는 우리 삼천만/ 빛나도다. 그 이름 대한이로세.’ 아이들이 여러 가지 놀이에 곁들여 이 노래를 불러댔다.

가을 운동회 날이나 한 쪼가리 맛보던 사과, 바나나는 구경도 못하던 때였다. TV는커녕 라디오도 낯설던 그 시절, 도시를 넘어 시골에까지 울려 퍼지던 노래다. 첫머리에 원숭이가 등장하는 걸 보면 본시 우리와도 인연이 깊었던 모양이다.

죽은 새끼를 품안에 안고 다닐 정도로 원숭이는 모성애가 강하다. 원숭이의 그 강한 모성애가 우리 여성들의 성정을 닮은 것은 아닐까. 원숭이를 애완용으로 기르는 집에 주인이 집을 비우자, 원숭이가 아기를 돌보는 모습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영리한데다 셈도 있어 정이 가는 동물임에 틀림없다.

어느 역술인이 병신년 원숭이띠의 한 해 운세를 내놓고 있었다. “무모한 욕심으로 모든 일처리를 하려 하면 힘만 들고 원하는 바는 하나도 얻을 수 없을 수 있다. 모든 상황에 최선을 다하면 효과는 반드시 있을 것이니 한 가지만 고집하지 말고 다각도로 생각하라. 아무리 경치가 아름답더라도 영원하지 않다. 인간관계가 그렇다. 직장인은 상사와의 관계 개선에 힘써야 한다.”

우리 사회가 날로 메말라 간다. 자기만을 생각할 뿐 남을 동정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결핍하다. 자신을 우선하는 것을 부정하려 않는다.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라 함이 아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나무를 보면 안다. 나무는 남을 위해 살지 않는다. 자기대로 살다 보면, 열매도 공기도 그늘과 땔감도 주게 된다. 인간도 자기대로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내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면, 그것이 남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데 도움을 준다. 다만 내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려면 남의 자유와 행복을 침해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자유와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듯, 남에게도 자유와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남을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 이왕이면 품에 품으면 어떨까. 사랑으로 끌어안음이 세상을 훈훈하게 한다. 원숭이들처럼 말이다.

병신 새해에, 이웃에게 권하고 싶다. ‘원숭이만큼만 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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