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엔 진정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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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과장이라면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백의 ‘추포가(秋浦歌)’에 나오는 구절로 늙은 몸의 서글픔을 과장적으로 표현한 말. ‘흰머리가 삼천 발’이라 한 것은 늙음의 정서적 총량을 훨씬 더해 과대 진술한 것이 된다. 황혼의식의 향대과장(向大誇張)이다. 아무려면 백발이 두 팔 벌려 삼천 발이나 되랴. 대륙적 과장은 알아줘야 한다.

지리적으로 반도인 우리의 과장도 어지간하다. ‘산더미 같은 파도, 천년을 하루같이, 찌는 듯한 더위’처럼 실제보다 부풀린 게 있는가 하면, ‘쥐꼬리만한 봉급, 눈곱만치도’같이 실제보다 아주 덜하게 표현하는 예도 있다.

닭똥 같은 눈물이라고 과장하면 눈물의 실체가 확대돼 보다 선명한 인상을 풍긴다. 그래서 사물을 크게 불리거나 작게 덜어 나타내게 된 게 과장법의 준거다.

과장은 문장의 수사법에만 쓰이는 게 아니다. 실제생활에서도 숱하게 쓰인다.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입이 닳도록 타일렀다, 억만금을 주어도 안 바꾸겠다’ 하면 얼마나 실감이 나는가. 기막힌 발상이다.

이런 경우는 어떤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할지언정 집 한 채를 바치겠다고 하지는 않는다. 어디 목숨 한 번 바쳐 봐라 하지는 않아도, 집을 바치겠다고 했다간 당장 뒷감당이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 집을 내놔 봐라 할 것이니까. 그렇게 사람들이 약아 빠졌다.

하얼빈역두에서 당시 일본 총독 이토오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목숨을 내놓은 안중근 의사를 떠올릴 일이다. 세 방의 총탄이 침탈의 원흉을 명중시킨 직후에 외친 외마디 말,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 목숨 바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충무공이 한산대첩에서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이라 한 말을 포개어 생각하게 된다.

가령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맞아 31척을 격파한 충무공의 명량해전을 허투루 인용해서는 안 된다. 벼슬을 내려놓고 평민으로 군대를 따라 전장에 나섰던 백의종군도 함부로 끌어다 붙여선 안 되는 말이다. 이때의 과장은 충무공에 대한 모욕이고 모독이다. 극한적 상황에서 나라를 위한 구국의 선택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실제 상황으로 그것은 냉혹한 현실이었다.

정치인들이 어떤 지위를 내려놓으며 ‘12척’ 운운 하거나 ‘백의종군’하겠다 말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으로 충무공의 무사(無私)정신을 모르고서 하는 말이다.

허장성세란 말이 있다. 실력 없는 자가 허세로 떠벌림을 이르는 말이다. 허세 부림이다. 풍이 심하다 하거나 허풍 친다고도 한다. 지나치게 과장하는, 믿음성이 적은 언행에 대해 쓰는 말로 비아냥하는 뜻이 강하다.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뻥튀기는 건 자체가 왜곡이다. 사실보다 훨씬 부풀리는 것이고 옳지 못한 것을 바르게, 추한 것을 예쁘게 포장하는 것이라 그렇다. 미화(美化)가 정도를 넘으면 필시 과장으로 간다. 과장이 만연되면 사회악을 낳는다. 그 한 예가 각종 상품의 과대·허위 광고 등이다. 식품이나 약품을 과장하면 바로 국민 건강에 해악을 끼칠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다. 과장이 사람을 흔들어 현혹시키므로 문제다. 감언이설, 현란한 화술이 다 과장일 수 있어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할 세상이 아닌가.

알고 보면 과장처럼 부실하고 허술한 게 없다. 언행이 과장에 물들면 누더기가 된다. 귀를 바로 세워야 할 총선이 몇 달 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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