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삼의악오름-한라산부터 추자도까지 탁 트인 시야···거침이 없다
(3)삼의악오름-한라산부터 추자도까지 탁 트인 시야···거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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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주지역은 아침, 저녁으로 강추위가 매섭다.

 

가족 나들이, 힐링 등을 위해 과감하게 밖으로 나가자니 엄두가 안 나는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한겨울 날씨에 사람들은 집안에만 웅크리고 있기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겨울 운치가 더해지고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제주만의 명소가 있다면 주저하며 나들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여기 제주시 아라동에 위치한 ‘삼의악오름’은 겨울 등반의 묘미와 탁 트인 정상에서의 풍경이 묘미인 곳으로, 많은 방문객들의 발길이 연중 이어지고 있다.

 

삼의악오름은 새미오름, 삼의양, 삼의봉, 사모악 등 다른 이름들이 많다.

 

오름 정상 분화구에서 샘이 솟는다고 해서 새미오름으로 불리다가 이 명칭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이름들이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모악은 삼의악오름이 조선시대 선비들이 쓰던 모자인 사모(紗帽)와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이러한 삼의악오름은 5·16도로를 타고 제주시에서 서귀포시 방향으로 가다보면 제주대 교차로를 지나 제주국제대학교 서쪽에 위치해 있다.

 

등반로 입구는 제주지방경찰학교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우회전해 시멘트 도로로 들어서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삼의악오름은 해발 574m, 둘레 2473m, 총 면적 41만2000㎡에 이르다보니 제주의료원 인근에서 바라보면 거대한 모습을 자랑한다.

 

삼의악오름의 총 트래킹 코스는 약 2.5㎞고, 정상까지는 30~40분 가량 소요된다.

 

삼의악오름은 덩치에 비례해 경사가 조금 있다 보니 가끔은 쉬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다보니 등반로 중간 중간에는 의자가 마련돼 있으며, 안쪽에 이르면 이 오름의 이름을 낳은 샘도 발견할 수 있다.

 

제주시지역의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정상에서의 풍경은 아득하다.

 

힘들게 올라온 만큼 삼의악오름의 전망은 바다에서 한라산까지 거칠 것이 없다.

 

이러다보니 삼의악오름은 시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실제 오름 등반에 나선 지난 9일 정상에서 만난 제주Y신협 봉사단원들은 “제주시가지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고, 날이 좋으면 추자도까지 보이는 등 훌륭한 전경을 자랑한다”며 “5·16도로에서 이 오름을 보면 불쑥 솟아난 그저 평범한 오름으로 보이나 정상에 도착하면 탁 트인 풍경에 절로 기분이 좋아지면서 자주 등반하고 있다”고 말했다.

 

분화구를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도 등반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분화구를 돌면서 사방 전경을 모두 볼 수 있는 것은 삼의악 오름이 가진 또 다른 매력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삼의악오름에는 해송이 듬성듬성 식생하고, 남사면의 골짜기에는 자귀나무 등이 잡목들과 어우러져 있으며, 그 주변에는 곰취, 기슭에는 산수국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삼의악 진지, 일본군 주력 부대 주둔지  
 
 

삼의악오름 일대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제96사단 292연대 주력부대가 주둔한 것으로 알려진 삼의악 진지가 있다.

 

삼의악 진지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 제96사단 예하 부대의 배치 상태와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건립 경위를 살펴보면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1944년 7월 사이판이 함락되고, 그 해 10월 미군이 필리핀에 상륙하자 제주의 방비 문제를 긴급 중대 현안으로 인식했다.

 

곧이어 1945년 2월 유황도가 함락되는 등 전세가 불리하게 전개되자 그 해 3월 일본은 미군이 제주에 상륙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 ‘결7호 작전’을 수립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 제주를 독자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제58군사령부를 신설해 주둔시키고 96사단·111사단·121사단·108여단 등을 만주 및 일본에서 제주로 배치시켰다.

 

이후 1945년 8월 15일 종전이 선언될 때까지 제주에 주둔한 일본군은 무려 7만5000여 명에 이르렀는데 이들은 한라산 고지대를 비롯해 해안가와 오름에 각종 군사시설을 구축했다.

 

삼의악 진지는 이 때 만들어진 것으로, 이러한 일본군 군사 시설 구축에는 도민은 물론 다른 지역의 민간인들까지 강제 징용돼 아무런 보상도 없이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일본군이 이처럼 삼의악 진지를 비롯해 제주에 많은 군사 시설을 구축한 것은 일본 본토를 사수하기 위해 제주를 제2의 오키나와화 하려는 옥쇄 전략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삼의악 진지는 일본군 제96사단 예하의 연대급 병력이 주둔했던 저항 진지의 하나였다.

 

이처럼 삼의악 진지는 일본군의 당시 실태와 구축 양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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