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파람
마파람
  • 제주신보
  • 승인 2016.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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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 수필가
어머니와 바닷가에서 만나기로 했다. 조금만 늦어도 재촉하는 탓에 서둘렀더니 너무 일찍 도착했다. 여든이 넘어 물질을 오래하지 못하지만 물을 나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다. 약속장소 못미처 바다가 한 눈에 드는 곳에 차를 세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마파람에 머리카락이 흐트러진다. 빠르면 오늘밤, 늦어도 내일은 비가 내릴 것 같다. 해녀의 딸이라고 바람으로 날씨를 미루어 짐작하는 내가 가소롭긴 하나, 어머니를 통해 들은 풍월에 오십여 년 섬에서 몸소 터득한 예측이다.

마파람은 바다에 든 해녀들에겐 칠성판을 지고 넘어야 하는 맞바람이다. 마파람이 불어 물이 먼 바다로 밀려가는 것을 해녀들은 ‘물이 간다’고 한다. 자칫 가는 물에 떠밀리면 물질은 고사하고 목숨도 위태롭게 된다. 오늘 해녀들이 가까운 만(灣)에 모여 물질을 하는 것도 다 그 조짐 때문일 게다. 나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물이 어두워서 빈 망사리’라거나 ‘마파람에 물이 가서 죽는 줄 알았다’고 아버지에게 하는 말을 종종 들었다. 아버지는 그 말에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농사를 짓는 아버지야 가뭄에 마파람이 반갑겠지만, 해녀아내를 둔 지아비로선 불안의 조짐이기도 했다.

어느 여름날도 마파람이 불자 아버지는 공연히 마당에서 서성거렸다. 그때 남쪽하늘엔 먹구름이 올라오고, 성하를 맞아 무성한 멀구슬 나뭇잎들이 심란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결국 아버지는 ‘비가 오려나’ 하고 중얼거리며 마을회관엘 다녀온다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그건 핑계였다. 회관은 우리 집과 바다의 중간지점 언덕배기에 있었고, 그곳에선 바다를 훤히 내다 볼 수 있었다. 아버지는 얼마 안 되어 어머니와 나란히 집으로 돌아왔다. 언제나처럼 아버지는 손수 해산물을 손질한 뒤 그것을 안주삼아 반주를 하였고, 어머니는 그 옆에서 하루의 일들을 얘기하였다. 수입은 얼마였고 아쉽게도 큰 전복을 놓치고 말았는데, 물이 가지 않았다면 놓치지 않았을 거라는 등등의 얘기였다. 그 때 아버지가 하신 말은 “욕심이랑 부리지 말게”였다.

“나는 한 번도 동네 점방에 앉아 한가하게 술잔을 기울여 본 적이 없어. 사느라 바쁘기도 했지만 그것이 네 어머니에 대한 예의라 생각했어.”

언젠가 아버지가 하신 말씀인데, 사실 그랬다. 어머니가 챙겨온 해산물로 반주 한 잔 하는 것, 그것이 아버지에겐 최대의 호사였다.

“나는 처복이 있는 사람이라 상처하지는 않을 거여.”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고 생사를 넘나들던 어느 해 태연을 가장하고 하신 말씀이다. 결국 그 말씀대로 어머니는 목숨을 보전했고, 반면에 몇 년 되지 않아 아버지는 큰 병에 걸렸고, 제대로 손을 써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제 어머니에겐 마파람이 불어도 걱정해 줄 이가 없다. 젊고 힘 있는 해녀들은 멀리로 나가고, 어머니는 뭍 가까이에서 물질을 하다 힘에 부치면 혼자 물을 난다. “죽어사 저 바당도 잊어 불주, 목숨 붙엉 이신디 어떵 잊어부느니.” 바다에서 당신 벗을 잃었을 때 그만하시라는 내 말에 던지던 대꾸가 떠올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머니는 용천수가 솟는 곳에서 물옷도 벗지 못한 채 구붓하니 앉아 해산물을 손질하고 있다. 큰 소리로 불렀지만 어머니는 고개를 들지 않는다. “어머니!” 가까이 가서 다시 외치듯 불렀으나 당신이 하는 일에만 열중할 뿐 미동도 하지 않는다. 물질을 하고 난 뒤라 귀먹음 증세는 더욱 심해졌을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 두 팔로 어머니의 어깨를 그러안았다. 그제야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더니 환하게 웃는다. 검게 그을리고 주름진 얼굴에 아직도 가지런히 고운 이가 도드라진다.

“물이 가기 전에 나온다고 했는데 힘들어 혼났네.”

손질을 마치고 허리를 펴며 어머니는 아련하게 바다를 바라봤다. 그렇다면 물이 갈 거라는 걸 일찌감치 짐작했다는 걸까. 해녀의 삶 육십 년. 그 경지에 이르기까지 어머니는 얼마나 많은 마파람을 이겨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