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바리데기, 생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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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혁. 시인/문화비평가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지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황석영의 ‘바리데기’에서-

나는 그를 모른다. 명함에는 온갖 직함이 쓰였고, 정치 권력자의 자문 위원이었으며, 지역 경제를 살릴 위대한 정치인이라고 굵은 글씨가 박혀 있다.

미지의 그와 악수를 하고 있지만 그에게서 진정성을 느끼지는 못한다. 머잖아 날아올 팸플릿은 ‘해리포터’ 못잖은 판타지로 가득 채워져 있을 것이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선거를 치르고, 우리가 낸 세금으로 우리를 억압하도록 권력의 배지를 달아줄 걸 생각하면 괴롭다.

여당 지지자들은 온갖 부정과 협잡을 저질러도 여당을 찍을 것이고, 야당 지지자들은 분열과 무능의 행보를 보이더라도 야당을 찍을 것이다. 그 패거리들이 했던 행태를 사람들은 잊고, 온갖 미사여구에 휘둘리다 차선이 아닌 최악을 만들지도 모른다.

‘바리데기’가 구해온 생명수와 같은 이들은 어디 없을까?

서사무가 속의 ‘바리데기’는 일곱째 딸로 태어나 옥함에 담겨 버려진다. 바닷가 노부부가 그를 길러낸다. 15살이 되었을 때 그의 아비 오귀 대왕이 병에 걸려 서천 서역국의 약물을 구해 와야 했다. 여섯 언니들은 나 몰라라 하는데, 버려졌던 바리데기만이 홀로 그 무서운 여행을 떠난다. 무장승 청을 들어주고, 결혼하여 자식까지 낳아주고는 마침내 약을 구해온다. 새까맣게 타들어간 아버지의 입에 바리데기는 약을 넣어주고 생명을 구해낸다.

서사무가 ‘바리데기 공주’ 이야기는, 황석영의 ‘바리데기’(창비, 2007)라는 소설로 다시 환생했다.

탈북한 소녀 ‘바리’는 중국을 거쳐, 죽음의 밀항선을 타고 영국 런던에 자리를 한다. 마사지사를 하면서 사람들의 과거와 미래를 읽어내는 소녀 ‘바리’는 죽음의 고난을 뚫고 생명수를 가져오려 한다. 난민들, 굶어 죽은 자, 전쟁고아들, 물과 불에 죽은 자. 죽음의 피바다를 건너서 바리데기는 찾아온다. 한반도의 분단과 갈등, 광기어린 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지구의 아픔을 황석영은 매우 절절하게 그려냈다.

소설을 다시 읽었다. 혼수상태에 든 ‘바리’에게 “우리가 받는 고통은 무엇 때문인지. 우리는 왜 여기 있는지”를 묻는다. ‘바리’는 “사람들의 욕망 때문이래. 남보다 더 좋은 것 먹고 입고 쓰고 살려고 우리를 괴롭혔지”라고 공수를 준다. 생명수를 찾아 헤매는 꿈을 꾼 ‘바리’에게 ‘압둘 할아버지’는 말한다. “희망을 버리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지. …(중략)…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속이 타들어간다. 저출산과 고령화, 민주주의, 환경 등 모든 점에서 대한민국은 문제다.

어떤 이는 남은 시간이 7~8년뿐, 그 뒤엔 어떤 정책도 소용없다고 말한다. 코앞의 욕망 때문에 국가의 장기적 문제에는 손 댈 수 없는 정부가 문제라고 했다.

그래서 생명수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더러운 정치를 내버려두어선 안 된다.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자가 필요하다.

미래를 열 수 있는 비전과 능력을 갖는 자들이 절실하다. 잘못 하다가는 문제적 인간들이 내 가족과 이웃의 생계, 생명줄을 끊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힘세고 교만한 자들이 만들어내는 지옥을 걷어치울 ‘바리데기’ 같은 이들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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