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설 연휴는 팍팍한 일상을 뒤로하고 고향에서 잠시나마 지친 심신을 달래는 의미있는 시간이다. 귀성객들은 물론이고 관광객들도 남국의 겨울 정취를 만끽하며 심신을 충전하려 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11, 12일까지 휴가를 내서 아예 9일간 쉰다고 한다. 그야말로 황금 연휴다. 어쨌든 제주를 찾은 모든 이들에게 이 설 연휴가 즐거운 시간이길 바란다.
그런데 올 설은 어수선한 가운데 맞는다.
얼마 전 제주지역을 휩쓸고 간 기록적인 폭설ㆍ한파의 후유증이 만만찮다. 농가 하우스를 비롯해 축산, 산림, 수산양식 등 시설물 피해가 적지 않다. 그 보다 심각한 건 수확하지 못한 농작물의 동해(凍害)다. 한 해 농사를 망쳐 살아갈 일이 걱정인 농가나 서민들에게 넉넉한 설을 얘기하기가 어렵게 됐다. 게다가 지역경제의 근간인 감귤값이 처참하게 무너졌다. 최근 설 특수로 가격이 급등했다고 하지만, 물량은 이미 바닥나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뛴 부동산 가격은 없는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한 없이 키우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과열에 편승해 투기꾼들은 자기 배를 채우고 있다. 그 속에서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은 접어야 할 지경이 됐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하지 못해 고향을 찾지 못하는 청년이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난다.
이래 저래 고단한 민심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설 연휴 밥상에서는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과 정치 이야기가 최대 화두일 것 같다. 총선을 겨냥한 예비후보들은 설 민심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표를 의식한 얼굴 내밀기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진정성을 갖고 민생의 힘든 현실을 짚어내야 할 것이다.
녹록지 않은 여건이지만 설은 그래도 우리 민족의 큰 명절이다. 다시 송구영신의 마음으로 새 날을 맞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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