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따라비오름 -- 하늘과 바람이 머물다 가는 그곳엔 인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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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동부지역 매끈한 오름의 대표격

눈이 내린다. 눈 오는 날의 제주는 맑은 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겹겹이 쌓인 구름층을 오름이 받치고 희뿌연 물안개가 능성이를 타고 넘는 절경이 눈이 시리게 다가오는 것도 이때다. 제주 중산간 오름, 또 다른 매력을 드러내는 시간이다.

제주의 오름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서부와 동부권으로 나뉘며 특히 동부 지역 오름들은 서부지역보다는 평원도 넓고 매끈한 산체가 많다. 그 중 오름의 선이 가장 매혹적인 곳으로 따라비 오름이다.

따라비 오름은 표선면 가시리 일대의 13개 오름 중 한곳으로 제주시에서 봉개를 지나는 번영로를 타고 약 40분 정도면 만날 수 있다. 10월에서 11월 사이의 가을이 되면 지천에 억새가 은빛 물결을 이루는 장관을 선사해 다랑쉬오름과 함께 오름의 여왕이라 불린다.

한 겨울 노랗게 대만 남은 마지막 억새군락이 바람에 따라 몸을 누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순응할 줄 아는 자연의 경이로움이 무한한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따라비오름은 ‘오름의 여왕’이라는 별칭이 무색하게도 어원은 할애비에서 왔다. 따라비 오름 주위에는 모지(母地)오름, 장자(長子)오름, 새끼오름이 있는 데 그 중 따라비를 가장(家長) 격이라 하여 따애비, 모지오름과는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형국이라는 데서 땅하래비라 부르다 따라비·따래비로 와전되었으며, 한자어로는 지조악(地祖岳)이라 한다.

따라비 입구에 있는 정자를 기준으로 왼쪽으로 트인 길을 따라 가다 나무계단을 20여분 바짝 오르면 오름의 능선이 가만히 와 닿는다.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작은 봉우리가 비죽비죽 솟은 정상을 세 번에 걸쳐 타게 되는데 이는 따라비 오름이 그 옛날 같은 장소에서 세 차례 분화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상에 오르면 서로 다른 세 개의 분화구가 이어져 솟았다 주저앉다를 반복한다. 인생의 질곡을 표현하듯 담담하지만 구부러진 능선이 보는 각도에 따라 오묘하게 달라지니 이 또한 따라비만이 갖고 있는 위용이다.

따라비는 둘레 2633m의 원뿔 형태의 오름으로 움푹 팬 돔 모양의 세 개의 굼부리가 말발굽의 형상을 하고 있다. 비교적 평탄한 산세와 민틋한 능성이를 가지고 있는 이 오름은 표고는 342m이나 실제 오르게 되는 높이는 100m를 약간 넘어 초보 탐방객들도 쉬이 오를 수 있으며 오름의 능선을 돌아 산담과 방사탑들이 서 있는 굼부리 안을 한 바퀴를 돌고 내려와도 한 시간이면 족히 오름 산책이 가능하다.

오름 서쪽으론 바람의 속도를 보여주듯 13기의 풍차가 쉼 없이 돌아가고, 그 뒤로 큰사슴이오름(475m)과의 사이에 너른 초원지대가 펼쳐졌다. 따라비오름 북쪽으로는 조근아들이라 불리는 새끼오름이 있고, 동쪽엔 아이를 안은 어미의 형상을 한 모지오름과 영주산, 남으로는 번널 오름과 병곶오름이 보인다. 타 오름들과의 사이에는 거칠것이 없으니 마음이 탁 트이고 세상사 시름을 놓게 되는 것은 덤이다.

무엇보다 오름 북서쪽으로 쭉쭉 뻗은 삼나무들이 잣성을 따라 밭과 밭의 구획을 나누며 뻗어 있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옛날, 마을 및 개인 자산 중 최고라 치던 보물들이었던 소와 말을 방목해 풀을 먹이던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고, 그 일의 최적지는 모두 오름과 오름을 잇는 초원에서 이뤄졌다. 가시리 마을 사람들이 공동목장을 운영하며 말을 잃지 않기 위해 조선시대 때 축조했던 ‘가시리 잣성’은 표선면 가시리와 남원읍 수망리, 그리고 한남리 민오름을 연결해 축조된 방대한 목축유산으로 그 길이만 한라산 둘레들 돌고도 남고 600년의 세월을 머금어 오름과 풍력발전기, 초원 사이를 굽이치는 이색 풍경을 연출한다.

따라비는 오름오르미들 사이에선 난이도는 약하지만 감동은 센 오름이다. 오름을 타고 지나는 제주 하늘의 움직임을 목격하고 인공의 냄새조차 바람에 지워진다는 이치를 깨닫는 곳이기도 하다.

이 밖에 따라비오름을 가는 길에 조랑말박물관, 머체왓숲길, 정석비행장, 항공우주박물관, 성읍민속마을 등을 만날 수 있다.

 

♦갑마장길 - 갑마(甲馬)란 조선시대 국가에서 기르던 말충 최상의 말을 이르는 것으로 이러한 갑마를 모아 사육하던 목축지를 갑마장이라 했다.

 

조선 선조때부터 최상급 상등마들을 조정에 진상하기 위해 가시리의 번널오름, 따라비오름, 큰사슴이오름을 연계하는 광활한 초지대에 설치되었다.  해발 90~570미터의 중산간에 위치한 가시리 마을을 에둘러 지나는 이 길은 약 20km 구간으로 7시간 남짓 걸린다. 시간이 많지 않은 탐방객들이라면 쫄븐 갑마장길을 추천한다. 쫄븐은 ‘짧은’의 제주 사투리다. 조랑말공원에서 시작해 큰사슴이 오름을 지나고 잣성을 따라 따라비오름을 도는 이 코스는 10km로 약 3시간 소요된다.



정선애 기자 dodojsa@jejunews.com



*참고자료=김승태·한동호 저 <제주의 오름 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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