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맞이 有感
해맞이 有感
  • 백나용 기자
  • 승인 201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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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수 수필가

또 새해가 왔다고 해맞이 길에 나선 이들이 인파를 이루고 있다. 아직은 어둑한 별도봉 오르막의 그 좁은 길과 정상의 능선은 벌써 만원이다. 몇 년 전부터 운동 삼아 해맞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근래에 들면서 웰빙 바람을 타고 함께하는 이들이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아빠와 엄마의 손을 잡고 따라나선 어린이들도 즐거운 표정이다.
 

가까스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수백의 시선들이 동남쪽 하늘가 어디쯤에 로 향하고 있다. 멀리 나지막한 오름들 위로 짙게 드리운 구름 때문에 온전한 일출 광경을 기대하기는 애초에 글렀지 싶다. 그러나 벌어진 구름 새로 내비치는 순간의 섬광이라도 보이지 않을까? 기다리는 마음들로 사위가 조용하다. 광장의 풍악 소리도 한결 사그라진 듯하다.
 

일출 예정 시각이 조금 지났다. 그러나 해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때, 몇 미터 앞에 중년쯤 되어 보이는 한 여인이 두 손을 모으고 연신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구름 뒤에 몸을 숨긴 해를 향해 간절한 마음을 보내고 있음이 분명하다. 보이지는 않지만 해가 거기에 떠 있음을 그녀는 알고 있는 것이리라.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오로지 그녀만이 누군가와 교신을 하고 있구나. 소리 없는 음성과 빛 없는 밝음으로…
 

‘나는 무언가를 위해 저렇게 간절히 기원해 본 적이 있는가?’
 

회상의 시계를 유년기 시절로 돌려 본다. 고향 아랫마을에는 사철 파도 소리가 들리는 고즈넉한 절간이 있었다. 처음 그 곳에 간 것은 아홉 살 되던 해 이른 봄 어느 저녁때였다. 작은 어머니의 권유와 병치레가 잦은 아들 탓에 근심이 깊던 어머니의 선택이었으리라. 법당 앞에서 보살 할머니는 내 이마에 손을 얹은 채 짤막한 염불을 해 주셨다. 어머니를 따라 법당 안으로 들어가서 부처님께 절을 몇 번인지 올렸다. 한밤중에 풍경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었을 때 유리창으로 들어온 달빛이 내 얼굴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처음 당하는 낯선 일들로 주눅이 들었던 하루가 지났다.
 

그 날부터 그곳에서 들르는 일이 잦아졌다. 보살할머니의 외손자와 친구가 되었다. 그 형은 나보다 한 살 위인데 몹시 마르고 파리한 얼굴이었다. 다른 친구는 없어서 둘이서만 놀았다. 그러다가 보살할머니가 그 형만 데리고 법당에 들어가면 나는 문 밖에서 기다리곤 했었다. 반쯤 열린 문틈으로 흔들리는 촛불과 절하는 두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였었다. 문 밖에서 기다리다 혼자 돌아와 버리는 날이 많아지면서 내 발길도 뜸해져 갔다. 그 형이 많이 아프다는 걸 알게 되었던 것이다. 얼마 후 그 형은 아버지가 있는 아주 먼, 좋은 데로 갔다고 했다. 그 곳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세월이 훌쩍 흘러버린 지금도 가끔 보살 할머니의 합장한 모습이 아련히 떠오르곤 한다. 잡지 못하고 떠나보내는 외손자의 앞길에 불이라도 환히 밝혀주고 싶으셨던 거겠지.
 

“작년에도 허탕했는데 오늘도 허탕일세.”
 

“허탕은 무슨, 건강 운동하고 좋았지.”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주변을 둘러보니 같이 올라온 젊은 노야(老爺)들은 안보이고 낯선 얼굴들뿐이다. 왼편으로 보이는 바다위로 검푸른 한겨울의 파도가 넘실거리고 있다. 예정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구름 막은 열리지 않으니 마중 객들은 한둘씩 내려가기 시작한다. 완만한 내리막길을 돌아 네 갈래 길까지 어깨 부딪힘은 계속되었다.
 

느린 걸음으로 모충사 앞 언덕배기를 오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사방이 확 밝아지면서 내 그림자가 길게 앞으로 뻗는다. 돌아다보니 구름 사이로 밝은 해가 큰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순간을 놓칠세라 카메라의 셔터들이 분주해진다. 나도 한 장면을 담아서 막내에게나 보내야지. ‘2016년에도 파이팅해라∼’. 모충사 경내의 은행나무들도 물가의 아이들처럼 온몸으로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늑장부리며 기다린 보람이 있었나 보다. 아득히 먼 하늘로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솟아오르는 경외감을 어쩔 수 없다. 그에다 새해의 첫 일출이라는 의미를 더했으니… 실망하고 돌아가던 사람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