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비.바람.안개에 맞서야 했던 군사 통신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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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성 동부지역 봉수대들의 규모와 역할

전란이나 사변이 있을 때 봉수는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빛으로 반드시 신호를 전달해야 했다.

 

군 사령관을 겸한 제주목사가 머물던 제주성 제주목 관아에 비상시국을 알리려면 어떤 일이 있어도 중앙봉수 역할을 했던 사라봉수에 정보가 도달해야 했다.

 

비나 바람, 안개 등으로 불과 연기가 전달되지 않으면 화포나 나팔 소리로 대신했다. 이도 여의치 않으면 다음 봉수나 연대까지 뛰어가서 위기 상황을 알렸다.

 

오름 정상에 불을 피우는 봉덕은 5개로 이웃 봉수에서 볼 수 있도록 좌우로 나란히 가로로 배치했다. 세로로 배치하면 불과 연기의 숫자를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주시와 제주문화역사연구원이 발굴·조사한 제주성 동부지역 봉수는 지미→왕가→입산→서산→원당봉수를 거쳐 최종에는 사라봉수로 신호가 전달됐다.

 

문헌에 나온 동부지역 봉수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지미봉수=구좌읍 종달리 지미봉(해발 165m) 정상에 있었다. 동쪽으로 정의현 성산봉수, 서쪽으로 왕가봉수와 교신했다.

 

또 해안에 있는 종달연대에도 신호를 보냈다. 봉수대 둘레는 21.4m, 높이는 2.3m다.

 

▲왕가봉수=구좌읍 한동리에 있는 모래지반으로 된 낮은 언덕에 위치했다. 해발고도는 35m에 불과했으나 주위에 높은 곳이 없고 사방이 트여 있어서 동쪽의 입두연대, 서쪽의 좌가연대와 교신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과거에 직경 11m의 원형 봉수대 흔적이 남아 있었으나 최근 봉수대 터를 깎아 경작지로 일구면서 원형은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입산봉수=구좌읍 김녕리 입산봉(82m) 정상 부근에 있었다. 동쪽 왕가봉수와 6㎞, 서쪽 서산봉수와 7.5㎞ 떨어져 있었다.

 

입산봉은 중앙에 원형의 분화구가 있어서 봉수대 터는 남동쪽 봉우리에 자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름 전체가 김녕마을 공동묘지로 이용되면서 현재 봉수의 형태 및 규모 확인은 어렵고, 표지석만 세워져 있다.

 

▲서산봉수=조천읍 함덕리와 북촌리 경계인 서우봉 정상에서 해안가에 접한 해발 86m의 북쪽 봉우리에 있었다.

 

봉수대 남서쪽에는 함덕리 마을이 넓게 형성돼 있다. 동쪽 입산봉수에서 7.5㎞, 서쪽 원당봉수와는 7.6㎞ 떨어져 있다.

 

일제시대 서우봉 북쪽 절벽에는 진지동굴이 설치되는 등 이 지역은 해안방어의 요충지로 꼽혔다. 봉수대가 있던 자리에 경찰초소가 들어서면서 봉수의 형태와 규모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원당봉수=삼양동 원당봉 가운데 해발 94m의 작은 봉우리에 있었다. 원당봉은 해발 170m의 주봉인 원당악을 포함해 7개의 봉우리와 3개의 능선이 이어져 있어서 예로부터 ‘삼첩칠봉(三疊七峰)’으로 불려왔다.

 

직선거리로 조천연대와 3.8㎞, 사라봉수와 5.1㎞ 떨어져 있다. 봉수는 2중의 원형 토축으로 구성됐고 바깥 둘레는 42m, 중심부 반경은 11m에 이른다. 지금은 넝쿨과 잡목이 우거져 있어 흔적을 찾기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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