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가난을 선택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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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수필가

오랜만에 고향에 들렀다. 보이는 사람마다 낯이 설다. 이렇게 많은 외지인들이 언제 내 고향에 들어왔을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정주하는 삶에서 움직이는 삶으로 삶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고는 하나 너무 이외다.

 

낡은 집을 사서 리모델링하고 정착한 사람도 있고, 임시 들어와 사는 이들도 있다.

 

삶의 터전을 이곳으로 옮긴 이유도 다양하다.

 

제주가 그냥 좋아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내려왔거나, 아이 교육 때문에, 남편이나 아내의 건강을 위해서, 여행하다 살아보고 싶어서 살게 되었다는 등.

 

서울에서 몇 년 전에 내려와 이제는 거의 토박이가 된 A씨의 경우다.

 

제주에 여행을 왔다가 빈집을 발견하고, 장난처럼 흥정한 게 이주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번듯한 직장도 그만두고,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와서 이제는 사는 재미에 푹 빠졌다. 서울의 전세 아파트를 정리하고, 퇴직금까지 더하여 과수원도 장만했다. 과수원 수입과 남의 일 해주고 받는 노임으로 별 어려움 없이 살아간다. 과수 농사도 아직까지는 생산에만 머물고 있지만 앞으로는 유통이나 제조 같은 창의적인 부문까지 확장할 생각이란다.

 

서울에서 살 때는 지금 수입의 몇 배를 월급으로 받았지만 항상 빚지고 살았다. 자녀 교육비와 주거비에 너무 많은 지출을 하다 보니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었다. 심리적 허탈감이 더 큰 고통으로 자신을 옥죄었다. 거기다 아이들은 울안에 갇혀 기르는 꼴. 층간 소음 때문에 집안에서 마음대로 뛰어놀지도 못하고, 동네 놀이터라고 해봐야 맨날 그곳이 그곳이니 식상할 수밖에.

 

아이들 학원에 보내고, 외식도 하고, 주말이면 나들이도 해보았지만 남 따라 사는 삶일 뿐. 돈은 돈대로 들이면서도 자유나 여유는 먼 나라 이야기 같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이곳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식구끼리 살을 맞대어 산다. 주말이면 산이나 바다도 부담 없이 찾아간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파리하던 아이들 얼굴이 구리 빛이 됐다. 집안에서도 누구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뛰어놀고, 큰소리로 노래도 부른다. 야생마 같은 삶이라고나 할까. 수입은 줄었지만 농도 짙은 자유와 여유를 찾은 삶이다.

 

A씨처럼 도시를 떠나 시골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통계에 따르면 2010년 4057호였던 귀농귀촌 가구 수가 2014년에는 4만4586호, 8만855명이다. 5년 새 10배가량 증가했다. 30, 40대가 이중 절반을 차지한다.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니 지금은 훨씬 더 많은 도시인들이 귀촌이나 귀농을 했을 것이다.

 

요즘 자발적 가난(Voluntary poverty)이나 자발적 단순함(Voluntary simplicity)을 선택하는 삶이 세계적 추세다. 삶을 축소(downsizing)하고 삶의 속도도 늦추고(downshifting), 최소의 요소로 최대의 효과를 얻으려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추구한다. 많이 벌어 많이 쓰는 생활양식에서 벗어나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자발적 가난을 택한다. 소유를 줄여 생활을 단순화하고, 일을 줄이고, 서두르는 것을 줄이고, 빚도 줄이는 삶을 통해서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한다. 생활 패턴을 여유롭게 바꾸어 자기실현의 삶을 지향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각종 꼬리표들에 얽매이지 않는, 아무 조건 없이 자유롭게 남을 바라보고 사랑할 수 있는 삶을 추구한다.

 

마크 트웨인은 ‘문명화란 불필요한 필요의 끝없는 확장’이라했다. 도시가 문명화할수록 인간의 삶은 그것의 포로가 되어버린다는 의미다. 포로는 탈출을 꿈꾼다. 도시인들의 귀농이나 귀촌은 어쩌면 불가피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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