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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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아이들이 흉내를 내고 있다. 아직 정신적으로 미숙한데 어른이 되고 싶어 안달이다. 염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은 지켜볼 뿐, 속으론 혀를 차는 사람들이 많다. 걸핏하면 인권침해를 들먹이는 시절이라 누구도 내놓고 말을 못하는 모양이다. 요즘 청소년들의 따라 하기 놀이를 보면 그럴 때로구나 하는 생각과 염려스러운 마음이 교차한다. 노파심일까. 섣불리 말할 수 없는 건, 그들 눈에 간섭이 될 수 있겠고, 세상을 보는 시야가 어두운건 아닌가 하는 자격지심이다.

특히 소녀들이 예사롭지 않다. 여럿이 어울려 재잘대는데 민낯의 여학생을 만나긴 드물다. 뽀얀 피부에 겉도는 색조며 긴 머리 풀어 웨이브를 넣고 입술을 붉게 칠한 모습에 입이 벌어진다. 서투른 화장으로 행여 순수한 자연스러움에 누가 될까 염려스럽다. 학생은 교복과 어울리는 차림이 있게 마련인데.

또래 분위기에 함께 어울리지 않으면, 자칫 외톨이가 될까 불안한 심정도 있을 거다. 경쟁하듯 모방심리가 유행병에 부채질이다. 공부에 치여 잠자는 시간이 부족하고, 아침밥을 굶으면서까지 꾸미고 나가는 아이들이 딱하다며 부모들은 속상해 한다. 학비며 용돈에 화장품까지, 학부모들의 짐이 무겁게 느껴진다.

일종의 성장통일까. 목까지 차오르는 왕성한 에너지가 출구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이해 못 해주는 기성세대를 답답하다 한다. 숨 쉴 출구가 절실한 그들에게 어른들의 잣대는 잔소리로 들릴 수 있다. 어른도, 어린이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돌출구가 필요한 그들에게 격려와 이해가 필요하다는 건 알면서도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개중에 자신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청소년들을 볼 때는 밝은 내일을 보는 것 같아 든든하고 흐뭇하다.

불안정하게 휘청거리는 그들 곁에서 바람막이 노릇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 물질적 풍요 속 소통의 부재,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결핍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 아닐지. 흔들리고 불안한 게 어디 아이들뿐이랴. 어른들도 허둥대며 동동거리는 세상이라 미처 살펴주지 못하는 관심 밖 틈 일까.

여자들만의 특권처럼 누려온 게 화장이다. 성인 여자의 맨얼굴은 타인이나 자신에게 예의가 아니라 여겼다. 남에게 보이기 싫은 부분을 가리고, 허허로움을 대신한 색조로 가려 위안을 삼고자 필요했을 게다. 화장은 개인의 개성과 표현의 욕구로 품격을 높여 주는 역할을 한다. 세련된 화장 전후는 손과 눈썰미가 만들어 내는 재주로 가히 예(藝)로 평가할 만하다. 잘 꾸민 모습은 곧 자신감으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여기에 남성들까지 가세를 하는 세상이다. 보호본능을 일으킬 만큼 어지간히 여성화 된 모습에 성의 정체성이 흔들린다. 남성미 넘치는 덥수룩하고 까칠한 매력을 찾기 어렵다. 이런 세태에 소녀들의 따라 하기를 거론한다는 게 답답한 일로 보일지 모르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구의 갈등은 있어 왔다. 이해와 편견, 수용과 갈등, 배타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변화를 낳았다. 한 시대의 풍속이 문화로 이어졌고, 대중적인 유행이 예술로 이어지는 밑거름 역할을 했을 게다.

소녀의 민낯은 한 송이 꽃이다. 내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 그리울 지경이다. 풋향기 폴폴 흘리는, 싱그러운 에너지가 충만한 때에 덧칠이라니. 앞으로 어른 노릇하며 살려면 숨 가쁜 일들이 적지 않을 텐데. 서두르지 마라. 너희들은 그 순간만으로도 아름답고 빛나는 시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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