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제주물의 역사-물 부족 땅에서 생수 개발 도약
(1)제주물의 역사-물 부족 땅에서 생수 개발 도약
  • 김재범 기자
  • 승인 2016.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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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환경에서 어승생 저수지 개발로 물의 혁명...지하수자원 상품화

화산섬 제주에서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특히 지하수는 맛은 물론 성분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본지는 제주 물의 역사, 수자원 개발 현황, 먹는샘물 국내 시장과 해외 수출, 탄산수 시장을 진단하고 미래 제주 발전을 위한 성장동력으로서의 발전 방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 물 부족 시대와 물허벅

 

척박한 화산회토와 빌레가 삶의 터전이었던 제주는 예로부터 물이 부족했던 척박한 땅이었다. 그만큼 물이 귀한 지역이었다.

 

제주도는 비가 많이 내리는 곳이지만 땅속으로 물이 잘 스며드는 토질 때문에 물을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제주도민들은 1900년대 이전에는 대부분 빗물이 지하로 스며든 후에 암석이나 지층의 틈새를 통해 지표로 솟아나는 용천수나 빗물에 의존하는 봉천수(물통), 하천수를 길어다 이용했다.

 

그런데 바람과 돌이 많아 다른 지방처럼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다니기가 쉽지 않았다.

 

이때 물항아리를 등에 지고 용천 등을 찾아 물을 길으러 다녔는데 이 물항아리가 물허벅이다. 입구가 좁아 이고 다녀도 물이 잘 쏟아지지 않는다. 물허벅을 안전하게 운반하기 위해 대나무를 엮어 만든 바구니는 물구덕이다.

 

특히 제주의 여인들은 가뭄이 들면 고통 속에서도 수 십리 길을 걸어 물을 길어왔다.

 

▲ 간이수도 가설

 

근대적인 상수도 시대에 들어서기 전 서귀포시 지역의 일부 주민들은 간이수도를 이용했다.

 

제주도 수도의 효시인 정방 간이수도는 1926년 5월 시설됐다. 정방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는 용천수를 자연유하식으로 송수, 서귀동 일부 지역에서 이용할 수 있었다.

 

서호·호근 간이수도는 절곡지물을 수원으로 1927년 7월에 가설됐다.

 

토평·하효·신효 간이수도는 돈내코 물을 수원으로 1932년 7월에 완성됐다.

 

▲ 상수도시대를 열다

 

용천수나 봉천수에 의존하던 오랜 전통은 해방 이후 상수도 사업으로 깨지기 시작했다.

 

제주시에서 착수한 금산 수원 개발 사업은 1953년 시작돼 4년 후인 1957년 준공됐다. 제주도 최초의 근대식 상수도로 수돗물이 공급됐다.

 

1959년부터는 간이상수도 시설을 위한 수원 조사가 착수됐고, 제1수원지(산천단 용천수), 제2수원지(열안지 용천수) 및 외도수원지 공사가 1965년까지 계속사업으로 이어졌다.

 

서귀·중문지역에도 상수도가 시설되고 애월·한림·모슬포에도 상수도 시설 공사가 추진됐다.

 

1961년 11월에는 애월읍 수산리에서 도내 최초로 관정식 지하수 개발이 성공됐다.

 

이 관정 개발사업은 1969년까지 도내 58개소에서 실시돼 이 중 19개소에서 지하수 개발이 성공, 중산간 지역과 용천수 수원이 없는 산간마을에도 수돗물이 공급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가운데 어승생 저수지 개발 사업은 제주도 물 문제 해결의 획기적인 전기가 됐다.

 

1966년 정부에 의해 제주도 수자원개발 기본 구상도가 그려지고 1967년 고지대의 수자원 개발 사업이 착수된 것이다.

 

어승생 저수지 개발 사업은 1971년 12월 10만t 규모로 완공, 물의 혁명을 가져오는 대역사를 기록했다.

 

바야흐로 수천 년을 두고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숙명적인 물허벅 행렬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1970년대 들어 용천수 상수원 개발과 지하수 관정 개발사업은 병행됐다.

 

1971년과 1972년 외도천 수원 개발, 1971년부터 1975년까지 강정천 용수 개발 사업이 각각 추진, 제주시와 서귀포지역의 용수 난 해결에 기여했다.

 

또 농업진흥공사에 의한 지하수 조사가 시작됐고, 1972년부터 생활과 농업용 등 다목적 지하수 관정 개발 사업이 추진돼 1979년까지 124공이 개발됐다.

 

1985년에는 제주도의 상수도 보급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99.9%를 자랑하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1961년 도내 상수도 급수 인구가 전체의 10%를 겨우 넘는 수준과 비교하면 급성장한 것이다.

 

1980년대 후반에는 지하수 고갈과 해수 침투 등 지하수 난개발에 따른 부작용 발생 우려가 제기, 무분별한 개발 규제 여론이 일기 시작됐다. 결국 용수 공급은 광역상수도 체계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에 따라 제주도는 1993년 수립된 수자원종합개발계획과 1994년 확정 고시된 제주도 종합개발계획에 근거, 광역상수도 건설 사업에 나섰다.

 

▲ 지하수 브랜드화

 

1995년 ‘먹는 물 관리 법’이 제정되고 국내에서 생수 판매가 공식 허용되면서 제주 지하수를 이용한 상품화가 추진됐다.

 

제주도는 1995년 3월 지방공기업인 제주도개발공사를 설립, 지하수 브랜드화에 공을 들였다.

 

1995년 12월 20일에는 지하 420m에서 제주 삼다수의 원수인 천연 화산암반수를 뽑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산 70번지에서 지하수 굴착을 시작한 지 5개월 만의 일이다.

 

이에 따라 제주삼다수 공장 건립 사업이 추진, 1996년 11월 16일 기공식을 가진 후 223억7000만원을 투자해 1998년 1월 23일 준공했다.

 

제주도의 재원 확충을 위해 추진된 이 사업은 1997년까지 연간 16만t 규모의 생산 시설을 갖추고, 2000년까지 연간 29만t 생산 설비를 추가로 갖추도록 계획됐다.

 

제주삼다수는 1998년 2월 24일 처음 출시된 후 국내 먹는샘물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제주의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김재범 기자 kimjb@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