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할망 서운케 마라~바다밭 풍년 오나니…"
"영등할망 서운케 마라~바다밭 풍년 오나니…"
  • 정선애 기자
  • 승인 2016.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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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 들어온다. 영등 할망 들어오면 날씨도 궂고 변덕스러우니 집안 살림은 미리 정리해라. 영등 할망 화내면 세간에 구더기 인다. 빨래하지 마라. 세수한 물도 아무 데나 버리지 말고 집안에 큰일 치르지 마라.” 제주사람들은 매년 3월이 되면 이러한 민속 신앙적 금기들을 지키며 ‘영등’을 맞이했다.

 

‘영등’은 1년에 한 번 외눈박이 섬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제주 한림읍 귀덕리 복덕개를 거쳐 음력 2월 14일에 우도를 지나 본국으로 돌아가는 풍신(風 神)으로 제주에서는 ‘영등 할망’이라 불린다. 여기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구전된다.

 

영등 할망이 세상에 내려올 때 며느리나 딸 둘 중 한 명은 반드시 데리고 내려오는데 딸과 함께 내려올 때는 별일이 없으나 며느리를 대동하면 바다와 육지에 폭풍이 일어 큰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 이때 부는 바람을 영등 바람이라 하며, 영등을 달래는 의식으로 시작된 것이 영등굿이다. 말하자면 영등신은 해마다 일정기간에 찾아와 복리를 주고 가는 내방신(來訪 神)이며, 영등굿은 이 내방 신에게 어부와 해녀들의 해상안전과 생업의 풍요를 비는 무속부락제인 것이다.

 

▲마을공동체적 영등굿의 기원

 

영등신앙은 제주도 이외에도 내륙 동남부, 영남지방, 호남지방까지 광범위하게 나타나지만, 제주만큼 공동체 중심의 굿으로 전승된 곳은 없다. 또한, 영등을 맞이하는 영등손맞이굿 이외에 영등을 보내는 배송 굿인 송별 대제를 치르는 곳도 제주뿐이다.

 

‘2월 초하루에 귀덕, 김녕 등지에서는 장대 12개를 세워 신을 맞아들여 제를 지냈다. 애월에 사는 사람들은 뗏목의 모양을 말머리와 같이 하여 고운 비단으로 꾸미고 약마희(躍馬戱)를 하여 신을 즐겁게 한다. 보름날이 되어 끝나는데 이를 연등(然燈)이라 하며, 이달에는 승선을 금했다.’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 제주풍속조에 오른 영등에 관한 기록이다. 이 기록은 영등굿이 이미 조선조 이전부터 귀덕, 김녕, 애월 등 해촌의 마을 단위 굿으로 성행했으며, 5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바다를 업으로 삼는 종사자들의 공동체적 화합을 이끌어준 주술적 종교체험임을 보여준다.
 

 

▲칠머리당 영등굿

 

제주도의 영등굿은 조천읍 북촌리, 함덕리, 구좌읍 김녕리, 하도리, 세화리, 성산읍 오조리 등에서 전승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격인 건입동 칠머리당 영등굿은 1986년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된 후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돼 한국의 무당굿 중 처음으로 민속신앙의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칠머리당은 본래 건입동의 수호신을 모시는 본향당으로 해신당의 성격도 겸하기 때문에 일반 당굿보다 굿의 규모가 크며 영등신인 영등대왕·해신선왕과 함께 본향신인 도원수감찰지방관·요왕부인, 남당하르방·남당할망 등 총 3개의 신위를 모신다.

 

칠머리당이 있는 건입동은 바다마을이기 때문에 마을사람들 대부분이 바다를 생활터전으로 살아왔다. 굿의 준비와 관리를 해녀들과 선주의 부인들이 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영등굿이 가까워지면 해녀들은 공동작업을 한 날의 수익금 일부로 용왕상에 올릴 제물을 마련한다. 세 개의 신위에 메(밥)를 세그릇, 떡, 생선, 술, 돈을 얹은 쌀 등을 올린다. 배를 가진 사람들은 배선왕 몫이라 하여 시렁목 1필에 가족의 이름과 선박이름 등을 적고 가정의 무사안녕을 기원한다.

 

칠머리당의 자리는 산지항 동쪽의 칠머리라는 언덕에 있다가 산지항 확장공사로 인해 지금은 사라봉 뒤쪽의 새 부지로 옮겨졌다.

 

 

★"전통굿, 하급문화가 아닌 종합예술로 보길 바라"-인터뷰 김윤수 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 회장

 

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 회장 김윤수 심방(71)은 1995년 칠머리당 영등굿의 기능보유자 2호로 선정돼 지금까지 제주 전통 굿의 계승과 발전에 힘쓰고 있다. 첫 번째 기능 보유자였던 故 안 사인 옹에게 영등굿을 전수 받고 1980년에 칠머리당영등굿이 국가지정 문화재로 등록되면서 안사인 심방과 함께 무속 살리기 운동에 들어갔다.

 

김씨는 “1970년대 새마을 운동 붐이 일면서 무속신앙배척 의식이 전국적으로 팽배했다. 이때 미신타파운동이 철저히 이행된 곳이 제주였다.”라며 “굿을 벌이는 수많은 당은 없어지고 징소리만 들려도 신고를 할 수 있었으며 심방이라 불리는 많은 무속인이 수난을 당했다”고 제주 무속 신앙의 역사를 회고했다.

 

이어 “칠머리당영등굿이 문화재로 지정되고 당메 심방인 안사인 심방과 함께 인간문화재로 등록된 순간부터 나라로부터 공개적으로 굿을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은 것은 무속신앙의 종교적 독립임과 동시에 삶과 연계된 민간 신앙의 문화적 가치를 보여준 셈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칠머리당 영등굿 보존을 위해 현재 전수자 4명, 이수자 9명을 두고 있다”면서 “제주 전통 굿이 사람들의 인식에서 하급 문화로 취급되는 것이 아닌 음악과 춤, 기원이 한데 어우러진 종합예술로 보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특히 “지난 2월에 새로 개관한 전수관에는 제주도 각 마을의 굿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실과  상설 공연장 등이 마련되고 부담 없는 전수관 나들이를 위해  외부공연 유치, 아이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놀이프로그램 개발 등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며 제주 도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한편 칠머리당영등굿 보존회는 공식 영등굿 재연행사 외에도 각 시·도의 문화제, 생생사업 등에 참여하며 제주 전통 무속 문화를 대중화하는데 앞장 서고 있다.영등굿보존회는 2016년 문화재청의 생생문화사업의 일환으로 오는 8일부터 23일까지 도내 곳곳을 돌며 영등신 맞이 퍼포먼스를 벌이는 ‘영등할망 보름질 걷기’ 퍼레이드를 준비중이다.

 

정선애기자 dodo123jsa@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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