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가 창조하고 전승시켜온 독특한 문화에는 무속신앙 이외에도 노동요인 해녀노래가 있다.

 

물결 넘실대는 제주의 바다에는 어디를 가나 해녀노래가 있었다. 해녀들은 육지나 섬으로 물질을 나가는 돛배에 노를 저으면서 혹은 테왁을 한 쪽 어깨에 짚고 바다로 뛰어들며 노래를 불렀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바다에서 해녀는 삶의 대한 의지를 노래를 통해 분출했다.

 

‘해녀노래’는 본래 ‘노 젓는 소리’의 속하는 어업노동요로 ‘해녀 노젓는 소리’, ‘네 젓는 소리’, ‘잠(아래아)sP소리’, ‘잠(아래아)수질소리’, ‘이여싸소리’, ‘이어도사나’라고도 한다.

 

해녀노래는 제주도에서만 불려 지다가 제주 해녀들이 경상도나 전라도 등 육지 출가 물질을 가면서 한반도 해안 지역에도 전파됐다.

 

노래는 해녀들이 돛배의 노 젓는 동작에 맞춰 불려 졌기 때문에 주로 의미 있는 사설을 노래하는 선소리와 훗소리로 된 선후창 방식으로 불리고 간혹 교환창이나 독창 방식으로 불리기도 한다.

 

선소리는 배의 방향키를 조정하는 ‘하네’를 젓는 해녀가 부르기도 하지만 주로 배 옆에 위치한 노인 ‘젓거리’를 젓는 해녀가 선소리를 하고 나머지는 훗소리를 받는다.

 

특히 해녀노래의 사설은 여느 노동요와는 달리 물질 작업과 노 젓는 노동, 해녀들의 삶과 한반도 출가 등 이른바 노동 실태와 해녀의 생애를 노래한 사설이 많다.

 

단순하면서 역동적인 리듬이 자주 사용 됐으며 후렴구는 ‘이어도 사나’, ‘이여싸나’, ‘이여싸’ 등이 있다. 파도가 세거나 노를 빠르게 저어야 할 때 혹은 노 젓는 노동에 흥이 났을 때는 가락 없이 후렴구인 ‘이여싸’, ‘져라져라’, ‘져라벡여라’만을 소리친다. 파도가 잔잔하거나 노를 천천히 저을 때는 ‘이여도사나’, ‘이여사나’, ‘이여싸’와 같은 가락 있는 후렴을 불렀다. 바다가 안정될 때는 신세 한탄이나 애정 문제 등 생활 감정을 노래하기에 적합했다.

 

해녀가 노를 저으면서 부르는 해녀노래는 현장 구연의 산물이다. 그래서 시간·공간적 노동 현장이 사실적으로 묘사되며 눈앞에서 펼쳐지는 정경이 생동감 있게 표현된다.

 

발동선이 생긴 1970년대 이후 노동 현장이 바뀜에 따라 물질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해녀를 찾기가 힘들어 졌다. 이에 따라 해녀노래는 1971년에 ‘제주민요’로 국가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전승되다가 1989년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돼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1993년 구좌읍 행원리 故안도인이 보유자로 지정 전승돼 오다 2005년에 구좌읍 행원리 김영자·강등자가 보유자로 지정됐으며 제주도무형문화재 제1호 해녀노래 보유자를 중심으로 구좌읍 행원리에 해녀노래 보존회가 구성 됐다.

 

 

▲(인터뷰) 강등자 해녀노래 보유자

“이여싸나 이여싸나/요 넬 젓고 어딜 가리/진도나 바당 항구로 나게/요 네착을 심어사민/어신설움 절로나네//이여싸나 이여싸나/혼착 손엔 테왁 심엉/혼착 손엔 비창 심엉/혼질 두질 저승 길에/저승건 당 말리나 강산”

방안 가득 퍼지는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삶의 고단함이 물질과 연결돼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경쾌하면서도 한 서린 노래를 부른 주인공은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1호인 강등자씨(80)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마을 목욕탕에서 빨래를 할 때면 옆에 있던 얕은 바다에서 헤엄을 치곤했던 강씨는 16살이 되자 본격적으로 물질을 시작했다.

 

강 씨는 “20살 때부터 28살까지는 출가물질을 나가 충청도와 경상도, 강원도, 거제도, 안면도 등 한반도 구석구석 안 가본 데가 없다”며 “그 시절에는 돈을 벌기 위해 해녀들이 서로를 벗 삼아 출가 물질을 많이 갔다. 그때는 너무 힘들어 몸무게가 40kg을 넘지 않을 만큼 말랐었다”고 말했다.

 

그런 그녀 고단한 삶을 위로해 준 것은 다름 아닌 노래였다.

 

강 씨는“어머니에게 자연스럽게 배운 해녀노래는 물질하는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며 “노래를 불러야 힘이 나서 신나게 물질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녀노래에는 나뿐만 아니라 그 시절 물질하던 해녀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다”며 “내가 해녀노래를 구연할 수 있는 이유는 물질의 고단함을 알기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 그녀는 2005년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돼 현재 두 명의 후계자에게 해녀노래를 전수하고 있다.

 

“그 옛날 해녀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이 지금은 대부분 살아있지 않다”며 “이 때문에 “지금은 물질하는 곳에 가도 해녀노래를 듣기 힘들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면서 “후계자들뿐만 아니라 현재 물질하는 해녀들에게도 해녀노래를 알려주고 싶고 함께 불러보고 싶다”며 “해녀노래가 사라지지 않고 제주 바다에 다시금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백나용 기자 nayong@je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