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게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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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심 / 수필가

경칩이다. 절기답게 날이 푸근하다.

 

한차례 비가 내리고 옅은 안개까지 드리우니 봄이 성큼 다가온 듯하다. 마중도 못했는데 막무가내로 들이닥친 손님이다. 언제나 엉겁결에 맞이하게 되는 계절이지만 한 번 쯤은 마음을 가다듬고 찬찬히 오고 감을 느껴보고 싶은데, 일상은 늘 분주하다.

 

이제 비 끝에 많은 꽃들이 피어나겠다.

 

아이와 한 차례 실랑이가 있었다. 고등학생인 아이가 휴대전화기를 손에 들고 산다. 온 신경이 그리 쏟아져 있어서 다른 일들은 모두 건성 건성이다. 세상의 흐름이 그러하여 어쩔 수 없다 하면서도 노심초사 조바심은 떨칠 수가 없다. 세상의 온갖 정보가 다 들어있고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망이 이어져 있어서 시시각각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건 이해한다.

 

가히 혁명이라 할 만큼 생활의 필수품으로 등장하여 좋은 기세를 누리고 있는 그 물건을 비하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들 관계에서는 수류탄이다. 늘 아이 앞에선 감정적이지 않으려 마음을 다지고 얘기를 꺼내지만 한 두 마디 오고 가다 보면 투전판이 되고 만다. 철커덕, 철창이 쳐지는 순간이다. 모든 게 지나가는 과정이라 여기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볼 수만도 없는 일, 안절부절 하며 속만 끓이는 게 부모 마음인 것 같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냇가에서 털게를 잡았던 기억이 있다. 오래되었지만 그때 횃불아래 보았던 맑은 물속의 털게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울창한 나무들이 어우러져 큰 숲을 이루고 머리위로 쏟아질 것 같은 직각바위들은 수문장처럼 서있는 계곡이 있다. 그 안을 들어서면 나무들이 간직해온 수천 년의 시간과 오랜 세월 골짜기를 지켜온 태고의 신비가 서늘한 기운으로 몸과 마음을 씻어주는 그런 곳이다. 거기에 털게들이 살고 있었고 나도 그들과 같이 살았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없이 털게를 만나게 하고 내 영혼의 안식처를 마련해 주었다.

 

깨끗하고 맑은 물이라야 살 수 있는 털게들. 삶의 한 복판에서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소박하고 선한 믿음을 키워주며 나를 지켜주었던 고마운 선물이다.

 

한 때는 계곡물이 생활하수로 오염되어 물속에 살던 어류들이 다 떠났다고 해서 안타까웠던 적이 있다. 다행히 지금은 복구되어 버들치도 돌아왔다니 털게들도 살던 곳으로 돌아왔겠지. 계곡물이 맑아야 많은 생물들이 살고 나무들이 숨을 쉬고 우리도 살고 온 우주가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닌가.

 

내 아이는 무엇으로 행복해 할까. 눈과 귀가, 심지어 머리와 마음까지 번쩍거리는 영상으로 점령당하고 무엇으로 세상을 느끼고 아름다운 걸 찾을 수 있을까. 서로 마주해서 눈 맞추며 선한 웃음 지을 때, 오롯이 너와 나만 인 그 순간, 영혼이 따뜻해지고 온전히 내가 되어 우주의 한 점이 되는 걸 알아낼 수나 있을까.

 

아버지가 그랬듯이 나도 그러하여야 할 텐데.

 

백나용 기자 nayong@je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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