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현장, 임진각과 제3땅굴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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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흥식. 수필가

파주시에 있는 임진각과 제3땅굴을 관광하기 위하여 용산에서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먼저 임진각 전망대에 올라 북녘 땅을 바라보지만 뿌연 안개가 끼어 있다. 북쪽의 휴전선에서 남쪽으로 7㎞ 서울시청에서 북서쪽으로 54㎞ 떨어진 임진각은 남과 북의 비극적인 현실을 가장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장소이다. 오늘도 많은 관광객들이 분단의 슬픈 현실을 보고 느끼기 위해 줄을 잇고 있다.

임진각은 실향민들의 아픔을 달래는 장소로 기억하고자 1972년 세워졌으며 취지는 두고 온 산하를 건너다보고 망원경으로 둘러보면서 무언가 헛헛하고 절박함을 달래보고자 건립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임진각은 커피점과 음식점 등이 거의 차지하는 상가로서 의외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임진각 본관 건너편에는 1985년 조성된 망배단이 있다. 매년 명절이 되면 실향민들이 이곳에 와서 고향을 향해 절을 하는 곳으로 북쪽에 두고 온 가족 친지들을 그리며 실향민들의 아픔을 달래는 장소이다.

망배단 뒤쪽에는 반세기 넘게 애오라지 통일의 그날만을 기다리는 1953년 건설된 자유의 다리가 놓여 있다.

길이 83m, 너비 4~5m, 높이 8m로 목조와 철조를 혼합하여 만들어졌으며 1953년 휴전협정에 의해 한국군포로 1만2773명이 자유를 찾아 귀환한 다리라고 해서 ‘자유의 다리’라고 했지만 이름과는 전혀 다른 자유가 없는 다리가 되어 있다.

‘자유의 다리’ 옆에 전시된 포화로 얼룩진 증기기관차의 처참한 모습이 또 한 번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 흉물스러운 열차는 2004년 아픈 역사의 증거물로 보존하기 위해 문화재로 등록한 후 ‘철마는 달리고 싶다’ 통일과 평화를 기원하며 DMZ에 있던 것을 2007년 이곳으로 옮겨놓았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남과 북이 겪은 아픈 역사를 생각해 보니 마음이 아팠으며 하루속히 통일이 되었으면 박대통령의 말과 같이 대박이 확실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음은 제3땅굴이다. 앞에는 관광버스가 줄지어 있고 관광객들이 무리지어 있다. 관계자의 말로는 평일엔 3000명 정도이고 주말에는 7000명 이상이라고 한다.

먼저 전시관으로 가서 땅굴을 파야 하는 분단의 역사와 자연생태를 담은 영상물을 관람했다. DMZ 모형, 땅굴의 모형, 군사분계선의 모형 등을 보면서 겉으로는 평화를 외치면서 속으로는 땅굴을 파야 했던 우리 조국의 역사적 현실에 가슴이 아프다.

1974년 북한의 귀순자 김부성씨가 아군에게 땅굴을 제보해서 발견하게 된 것이 제3땅굴이다. 군사분계선 기준으로 북으로 1200m 남으로 435m 길이로 파던 과정에서 발견되었고 현재는 땅굴 265m만 볼 수 있다. 김일성이 파놓은 땅굴은 헬멧을 써야 안전하다. 제3땅굴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침투한 땅굴로 총길이는 1635m이며 지하 73m에 위치하고 있다. 남방 한계선까지 거리는 435m로 시간당 군 이동은 완전 무장 시 1만 명, 비무장 시 3만 명의 병력이 이동할 수 있으며 문산까지 거리는 12㎞이다. 이렇게 김일성이 피땀 흘려가며 공을 들여 파놓은 땅굴에 이제는 수많은 국내·외관광객들이 몰려와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니 김일성에게 고마워(?)해야 할지 의문이다. 아마도 김일성은 지하에서 통곡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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