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를 넘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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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수필가

겨울동안 칩거하다시피 했다. 해가 다르게 느껴지는 몸의 이상 신호가 일상을 움츠리게 했고, 추위를 마다하고 나다닐 용기가 없었다.

오랜만에 오름 허리를 걸었다. 나신의 나뭇가지가 통통하게 물이 오른다. 칙칙한 겨울 빛을 걷어내는 노란 복수초의 눈부신 얼굴, 낮은 키로 비탈에 다문다문 핀 변산바람꽃이 지천이다.

양지바른 쉼터 의자에 앉아 봄맞이 해 바라기를 한다. 좀 전부터 까마귀 두 마리가 단풍나무 가지를 넘나들며 내 눈치를 보고 있다. 부산스럽게 날개를 퍼덕거리며 손에 든 과자 봉지에 시선이 머물곤 한다. 울음소리가 허기진 듯 헛헛하다.

너희들이 배고프구나. 계절적으로 보릿고개지. 생태계의 질서로는 먹이를 줘서 안 되나 그들에겐 춘궁기다. 벌레며 열매가 귀한 겨우내 제대로 된 먹잇감을 구하기 쉽지 않았으리라. 배고픈 게 제일 서러운데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과자를 던져주었다. 한 마리는 내 행동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던 듯 잽싸게 물고 달아났다. 곁의 녀석은 눈치만 보다 번번이 놓친다. 몇 번 가까이 던져 주었지만 모두 뺏기고 말았다. 결국 한 번도 먹지 못한 걸 보며 자리를 떴다.

용기 없고 소심한 녀석인가 보다.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고 주저하다 시장기만 더 했을 거다. 제 것도 챙기지 못하고 잽싼 동료에게 밥을 뺏기는 걸 지켜보노라니 딱했다. 그래도 봄이 오고 있어 다행이다.

인간세계도 그들과 별다를 것 없다. 먹고 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치르며 살아야 할 각박한 현실이다. 상대의 눈치를 보며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서러운 이들이 왜 없겠는가. 기를 피지 못하니 가슴은 옹색할 것이고 희망을 품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상반기 기업체 입사시험이 시작됐다고 한다. 꿈을 심어 싹을 틔워야 할 이 계절에 젊은이들의 눈치경쟁은 언제 끝이 날는지. 옛 어른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가 먹을 것은 타고난다고들 했다. 한데 생명을 이어 갈 가장 기본적인 밥그릇 찾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오랫동안 끝이 보이지 않는 실업사태로 젊은이들이 춘궁기를 겪으며 보릿고개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이들에게 봄은 언제 오려나. 정부가 실업대책이며 일자리 찾기에 공을 들인다지만 앞이 보이질 않으니 암담하다.

과거 기성세대의 보릿고개도 참으로 혹독했다. 좋은 일 궂은 일 가릴 여유 없이 오직 먹기 위해 일에 매달렸던 시절이다. 그 덕에 나라의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었고 오늘을 있게 했다. 성공한 사람들의 과거가 화려하게 출발했던 것은 아니다. 숱한 좌절과 실패 끝에 얻은 전리품이 그들을 빛나게 했다.

자세를 조금 낮추면 보이지 않던 세상은 다양하게 널려 있다. 큰 것에만 눈을 보내지 말고 작은 것에도 희망의 씨앗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실현 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한다면 길이 보일 거다. 서둘러 조바심내지 말고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를 찾는 지혜, 두려움 없는 도전으로 부딪치며 경험을 쌓아 보라 권하고 싶다.

곧 20대 총선을 치른다. 명예와 권력에 눈이 어두운 정치인들이 오직 제 밥그릇 잡기에 눈치전쟁이 한창이다. 치졸한 진흙탕 싸움질에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은 아랑곳없다. 우리가 밥 걱정 덜하고 살려면 종이 한 장 위의 선택은 신중해야 한다. 그들의 눈치싸움질에 누가 진정성 있는가를 냉정히 살펴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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