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5년 사마랑호 함장 벨쳐가 작성한 제주도 해도.

이상한 모양의 배라는 뜻인 이양선(異樣船)의 출현은 환해장성을 확대, 복구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1845년(현종 11) 영국 군함 사마랑호(Samarang)는 우도에 도착, 이 섬을 기지로 삼아 40일 동안 제주에 머물렀다.

영국인들은 우도에 흰색 깃발을 꽂아 놓고, 바다의 수심을 측정해 돌을 쌓아서 회(灰·석회가루)를 칠해 방위를 표시했다.

현종실록에 따르면 “영국인들은 때때로 포를 쏘니 소리 때문에 산악이 진동했다. 작은 배를 타고 줄자로 섬을 측량했다. 매번 100보마다 돌을 쌓고 회를 칠하고는 그 속에 쇠자루(鐵釘)를 끼웠다. 우두머리(上將)가 삼읍 연안을 두루 묻고, 말하는 대로 그들은 즉시 그림을 그렸다. 목사 권직이 놀라 마병(馬兵)과 총수(銃手), 성의 군사를 모아 이에 대비했다. 그해 겨울에 도민을 총동원해 환해장성을 크게 수축했다.”

현종실록 이후 환해장성을 축조한 기록이 없는 것을 감안, 1845년 권직 목사가 백성들을 동원해 쌓은 것이 지금 남아 있는 환해장성의 자취로 학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영국 군함 사마랑호의 함장은 에드워드 벨쳐(1799~1877)다. 그는 1845년 5월부터 8월까지 제주도와 거문도를 비롯해 조선의 남해안을 탐색하는 임무를 맡았다.

   
▲ 1845년 제주에 상륙한 사마랑호 함장 벨쳐가 만난 정의현 관리를 그린 모습.

171년 전 그는 한라산의 높이를 6544피트(1995m)라고 측정했다. 지금(1950m)과 비교해 불과 45m의 차이를 보였다.

그가 작성한 지도에는 제주도를 ‘켈파트섬’으로, 한라산은 ‘오클랜드산’으로 표기했다. 마라도는 ‘지파드’, 가파도는 ‘발로우’라고 명명했다.

사마랑호가 떠난 후 제주목사 권직은 변방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고 하여, 정의현감 임수룡과 대정현감 한정일, 제주판관 송익렬을 파면하고, 각 진(鎭)의 장수들을 중벌로 다스려야 한다며 조정에 건의했다.

이양선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목사 권직도 조정에 의해 감봉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