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가 깨끗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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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성. 재뉴 언론인

베를린에 본부를 둔 국제투명성기구는 매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를 발표한다. 한 나라의 공직사회가 얼마나 청렴한지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다. 뉴질랜드는 지난 1998년부터 시작된 이 조사에서 늘 상위권에 오른다. 가장 낮은 성적을 낸 게 지난해 4위다. 한국은 한 해전보다 여섯 단계나 뛰었지만 37위였다. 국가 청렴도에서 두 나라는 꽤 차이가 나는 셈이다.

그런데 찜찜한 성적표를 받아든 한국에서도 제주특별자치도의 청렴도는 조금 더 실망스러운 것 같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청렴도 조사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은 몇 안 되는 지방자치단체중 하나인 까닭이다. 그래서 각급 기관별로 직장 교육도 하고 회의도 하면서 반부패 청렴문화 정착을 위해 나름 애쓰는 모양이다.

그러나 반부패 청렴문화가 정신교육이나 기관장의 훈시 몇 마디로 정착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조선시대 청백리를 본받으라는 것도 시대상황과는 맞지 않다. 멸사봉공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도 무리다.

모든 규범은 모름지기 보편적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시대 흐름과 맞아야 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실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규범을 앞장서서 실행할 수 있도록 공직자들의 자긍심을 높여주는 일도 빼놓아선 안 된다. 그러나 그 정도로 공직사회가 청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 그것 또한 순진한 생각이다. 부정사건에 대한 엄중한 제재도 반드시 따라야 한다. 물을 흐리는 행위는 흙탕물이 되기 전에 차단하는 게 상책이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에 살면서 공직자들이 검은 돈을 먹었다는 얘기는 좀처럼 들어보지 못했다. 정치인들이 향응을 받았다는 얘기도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 소문이 한 번만 돌아도 공직에 살아남기 힘든 사회풍토 때문일 것이다.

몇 해 전 중국계 현직 장관은 국회의원과 그 배우자에게 주어지는 여행경비 보조금을 부당하게 수령했다는 이유로 장관직과 의원직을 모두 내놓고 정치권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아시아 이민사회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회자되던 그의 15년 정치 인생이 아프게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그가 받은 돈의 액수가 여러 번에 걸쳐 수천 달러, 우리 돈으로 몇 백만 원에 불과했지만 칼자루를 쥔 존 키 총리는 파면 가능성까지 내비칠 만큼 단호했다.

엄격한 잣대는 총리라고 예외가 아니다. 키 총리는 중국 초청으로 베이징을 방문할 때 가족을 데려가면서 공직자가 아닌 이들의 여행경비는 두말없이 자기 주머니에서 냈다. 공과 사를 그렇게 가르는 것이다. 그게 공직자들이 국민들의 눈높이에 부응하는 일인 것이다.

뉴질랜드 중대 부정사건 수사국(SFO)의 국장은 언젠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뉴질랜드 공직사회가 깨끗한 이유에 대해 공직자들에게 도덕성과 정치적 중립성, 국가에 대한 봉사 정신을 고취하면서 제도적으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제도 중에는 당연히 일탈에 대한 단호한 조치도 포함돼 있다. 말로만 하는 게 절대 아니라는 얘기다.

영국의 역사가이자 정치인인 액튼 경은 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혹시라도 공직자 중에 손에 든 권력만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검은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가와 국민에 대한 봉사가 얼마나 큰 명예이고 보람인지부터 곰곰이 새겨볼 일이다. 그게 어쩌면 국가 청렴도를 높이는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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