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운전면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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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능자/ 수필자

늦깎이 학생들의 한글 공부 의욕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가장 놀라게 한 건 A할머니의 엄청난 학구열이었다. 시골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면서 시내 있는 공부방 까지 오는 시간은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하루는 정류소에 붙여진 버스 시간표에 14:30 이라고 쓰인 숫자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모르는 것이 있으면 꼭 질문을 하고 알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호기심이 많은 할머니이다.


한글을 공부하러 오는 할머니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다 아는 한글을 몰라 답답하고 불편하지만 부끄러워 가족들에게 조차 비밀로 하였다. 그러나 A할머니는 딸을 앞세우고 공부방을 찾아왔다.


우리는 주변에 글을 모르는 사람을 두고 “‘낫’ 놓고 ‘ㄱ’ 자도 모른다.”는 표현으로 못 배웠음을 개인적 무능으로 쉽게 치부해 버린다. 문자를 통해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정보화 사회에서 문자를 모른다는 것은 단순히 글을 못 읽는다는  불편을 넘어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살아가는 삶 자체의 영위를 어렵게 한다.


 나는 교육자의 외길을 걸어왔다. 어떤 이는 나를 보고 그 오랜 기간 동안 가르친 세월이 얼만데 퇴임 후에도 노인들을 가르치는 것이 지겹지도 않느냐고. 43년 동안 초등교육을 경험 했던 노하우를 가지고 교육봉사자로 할머니들을 가르치러 나섰지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할머니들의 움츠러진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고 배려하는 자애심과 기다려 주는 끈기가 요구되었다.

 

교육은 교육자와 배우는 학생이 소중한 만남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특히 초등학생이 아닌 60, 70대 할머니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며 진정한 배움의 기쁨을 맛보게 할 것인가? 그래서 나는 할머니들의 ‘배우고자 하는 의지를 꺾지 말자’ ‘인격을 존중하자’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자’ 라는 세 가지 방침을 세우고 즐겁게 가르치는데 역점을 두었다. 그리고 읽고, 쓰고, 셈하기의 '3R's' 기본을 익히게 하여 남은여생이나마 계명된 세상 속으로 자신 있게 당당히 들어가 삶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램 이다.


“김00 여사님”하고 호명하면  “예” 하고 큰 소리로 대답한다. 처음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신입생처럼 작은 소리로 대답하곤 했었다. 지금은 자신 만만한 태도로 발표도 잘하고 글도 큰 소리로 읽는다. 나는 칭찬과 격려를 입에 달고 다닌다. 처음 한글 공부를 시작할 때는 망막했다. 당신들의 말처럼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이해가 느림은 어쩔 수 없었다. 가르침의 끈기가 필요했다. 일주일에 두 번 와서 배우는데 그것마저 빠지면 전에 배운 내용은 다 잊어버린다. 더구나 시력이 나빠서 돋보기를 두 개씩 쓰고 공부하는 모습은 안쓰럽기 보다는 공부에 ‘집중하는 모습’ 이 행복해 보이는 건 무슨 연유일까.


글을 읽고 쓰는 것은 세상을 읽는 것이다. 또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다. 글을 알고 나니 세상이 달라 보인다고 했다. 난생 처음 노래방에 갔다는 한 할머니는 노래를 부르고 난 다음 감동의 눈물을 흘려 분위기가 숙연해지기도 했었다.


학구열이 강한 A할머니는 면허증 시험 합격 떡을 한 박스 들고 와서 큰 소리로 “나 오토바이 운전면허증 따수다.” 이 한마디에 환호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할머니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가슴 벅찬 일이라고 하였다.


글을 몰라 사회에서 설움을 많이 겪었던 세대다. 평생을 가족만을 위해 희생하며 살면서 학교를 못 다녔기 때문에 70평생을 까막눈으로 살았지만, 늦게나마 한글을 깨우치게 되었으니 못 배운 한을 조금이나마 풀린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20세기 농경사회를 극복한 노인들의 삶의 무게와 비애 너머로 가슴 깊숙이 숨어 있던 아름답고 순수한 면모를 발견하고는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끼곤 한다.


A할머니의 오토바이는 갖가지의 애환을 싣고 내일도 모래도 과수원으로 신나게 달려 줄 것이다.


할머니들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나에겐 적지 않은 축복이다.


늦깎이 학생들을 지켜보며 나는 자신의 삶에 대하는 태도도 점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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