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활쏘기 대회와 우마 점검을 그린 탐라순력도 별방시사(別防試射).


1702년(숙종 28) 11월 1일 이형상 목사는 별방진에서 ‘전도 활쏘기 대회’를 열었다. 이를 기록한 화첩이 별방시사(別防試射)다.

대회에는 도내 10개 지역에서 온 교사장(敎射長·훈련교관) 10명과 사원(射員·활 쏘기 참가자) 208명이 참가했다.

대회는 멀리 떨어진 과녁을 맞추거나 또는 말 타고 달리면서 활을 쏘는 기사(騎射)를 비롯해 유엽전(柳葉箭·살촉이 버들잎처럼 생긴 화살)을 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목사는 부임 당시 활쏘기를 장려했고 제주목에 1170명, 정의현에 350명, 대정현에 160명의 사원을 길러냈다고 소개했다.

이 목사는 “이들은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시사(試射·활쏘기 대회)에 다투어 출전했는데 기량이 묻혀있기에 아까운 사람들이 많았다.

제주사람들은 활쏘기 재질 중 기사(騎射·말을 타고 활을 쏘는 것)가 가장 뛰어났다”고 기록했다.

활쏘기 대회에서 장정들은 자신의 기량을 맘껏 표출했다. 활쏘기 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하면 무과 전시(殿試·최종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이 목사는 “무예는 장기간 기량을 연마해야 하지만 가난하고 부역이 무거워 장정들은 연습할 틈이 없다. 하물며 사람들이 무사나 관리가 되려고 하지 않는 까닭에 나는 삼읍에서 교사장을 차출한 후 각 마을에서 상놈, 양반을 논하지 말고 모두 활쏘는 것을 익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성 안에서는 활쏘기 대회와 함께 우마(牛馬)를 점검하는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화첩에는 점검하지 못한 흑우둔(黑牛屯·흑소 무리)을 동문 밖에 모아 놓은 모습이 확인된다.

검은 소는 국가의 제사에 쓰기 위해 특별하게 키웠다. 조정은 해마다 15마리를 바치게 했다가 5마리를 추가해 20마리를 바치도록 했다.

그러나 소들이 병을 앓아서 20마리를 채우지 못하면 민간에서 키우던 검은 소를 뽑아내 바치고, 그 대신 잡색 소를 내주어서 백성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