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유배(流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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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택진 논설실장
제주는 역사 속 최적의 유배지(流配地)였다. 지리적으로 추방과 격리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춘 탓이다.

조선왕조 500년간 정치적인 인물 300여 명이 제주에서 귀양살이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절해고도(絶海孤島)의 땅에서 외로움으로 절망했으리라.

제주 바다는 그러기에 상심의 바다였다. ‘포구기행’을 쓴 시인 곽재구는 조천포구에서 이렇게 읊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지상에서 아파하고 그리워하고 쓸쓸해하며 이승의 삶을 마쳤을까요. 저기 보이는 저 검은 빛의 용암들과 파도들. 어쩌면 지난 천년의 세월 동안 이루지 못한 인간의 꿈과 그리움들의 가슴 먹먹한 빛깔은 아닐런지요.”

▲그러나 ‘유배의 섬’ 제주가 반드시 고통스러운 땅만은 아니였다. 당시 지식인들이 귀양살이를 하면서 꽃피운 학문과 예술의 발전을 묵과할 수 없어서다. 추사 김정희(1786~1865)가 대표적인 인물. 그가 위리안치(圍離安置ㆍ집 주위에 가시울타리를 둘러쳐 죄인을 가둠)의 유배형을 받고 제주에 온 것은 1840년, 그의 나이 55세때였다. 알다시피 대정읍에 있는 추사 유배지는 그가 9년간 기거했던 곳. 거기서 추사는 오로지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로 유배의 신산(辛酸)한 삶을 극복했다. 그런 연유로 추사의 제주 유배는 그의 예술세계를 더욱 고양시킨 계기가 됐다. 그의 걸작 ‘세한도(歲寒圖)’가 바로 그때 나왔다.

▲역사의 반전이라고나 할까. 시대가 흘러 제주는 그 옛날 유배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변했다. 제주에서 살겠다는 사람들의 이주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거다. 그 바람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지난해 순유입 인구가 1만4257명, 그리고 올 들어서도 1분기에 4183명이 더 들어왔다.

그 배경엔 이른바 삶의 ‘다운시프트(downshift)’라는 키워드가 있다. 이 말은 원래 자동차 기어를 고속에서 저속으로 낮춘다는 뜻. 많은 이들이 돈벌이와 성공에 쫓기는 숨가쁜 일상을 거부하고, 소비 규모를 줄여서라도 정신적 여유를 찾으려는 움직임이다.

이로 볼 때 다운시프트의 목적지로 제주가 각광받는 거다. 어느 학자는 이 현상을 일컬어 ‘자발적 유배인’라 했다. 제주가 타의에 의한 형벌의 유배지에서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유배지가 됐다는 의미다.

그러나 다운시프트든, 자발적 유배든 제주가 이제 포화 상태다. ‘미친 부동산’이란 말이 나오고, 교통ㆍ쓰레기 등 생활민원이 폭주하고 있다. 비단 필자만의 생각일까.

“바람아 멈추어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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