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괸당’문화와 열린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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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성. 재 뉴질랜드 언론인

친인척을 일컫는 말인 ‘괸당’은 제주 사람들에게 친숙하고 정감이 넘치는 말이다. 그러나 육지 사람들에게는 다르다. 제주사회에 가까이 접근하려고 할 때 넘기 힘든 벽처럼 보이기도 하는 모양이다. 제주에서 사업을 하는 서울 출신 사업가는 제주 생활의 어려운 점으로 괸당 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아웃사이더로서 느끼는 소외감인 듯했다. 따뜻한 말 속에 감춰져 있던 차가운 배타성을 감지했는지도 모른다.

괸당은 혈연 사회의 연결 고리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씨족사회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부족사회를 거쳐 고대국가로 넘어가면서 씨족사회의 정치적 의미가 약해지긴 했지만 가족 공동체로서 갖는 의미는 아직까지도 우리들의 핏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셈이다.

서로 의지하고 상부상조하는 사회 기본조직으로서 괸당은 문제가 될 수 없다. 심지어 부모와 자식 간에도 남남처럼 대하기 일쑤인 서구의 개인주의와 비교하면 따스하고 인간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괸당의 울타리를 정치 사회적으로 확장해 나아갈 때다. 망국적인 영호남 지역주의,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학연과 똑같은 맥락의 연고주의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연고주의의 병폐는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안에 안주하며 보이지 않는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달콤한 유혹일 수 있다. 하지만 연고주의는 정당한 가치에 근거를 둔 경우가 거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연고주의는 폐쇄성과 배타성이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로 굴러간다. 그리고 그것은 집단주의 성향을 드러내면서 국외자에게는 예외 없이 소외감과 박탈감이라는 상처를 입힌다. 닫힌 사회가 만드는 상처다.

지금부터 80여 년 전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닫힌 사회를 미개사회로 보고 합리주의에 기반을 둔 열린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적대적이고 배타적인 관계에서 개방적이고 우호적인 관계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출신 칼 포퍼는 여기서 더 나아가 반증이라는 방법론을 이용해 왜 우리가 열린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지 역설했다. 인간사회의 제도와 관습, 법률이라는 게 영원히 옳을 수 없기 때문에 언제든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주장과 행동을 수용할 수 있어야 사회가 발전한다는 논리다.

지금부터 1400여 년 전 중국 땅에 들어섰던 당나라는 당시 세계에서 국력이 가장 센 나라였다.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었다. 현재까지도 당 나라는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제국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우리 선조들을 비롯해 인도인, 유럽인, 아랍인 등 다양한 인종이 모인 당 나라 수도 장안은 국제적인 도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당나라가 강력할 수 있었던 데는 이민족에 대한 차별이 거의 없는 열린 사회였기 때문이라는 게 많은 역사학자들의 견해다.

 

외래인들을 배타적으로 대하지도 않았고 멀리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웃처럼 섞여 살면서 활발하게 교류했다. 그 이후 중국 땅에 들어선 왕조들이 폐쇄정책으로 쇠락의 길을 걷다 근대화 과정에서 엄청난 시련을 겪은 것과 비교하면 당나라의 선견지명은 놀라울 정도다. 열린 사회가 발전한다는 명제는 지금도 그대로 적용된다. 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 등 지구상에서 선진국으로 대접받는 나라치고 자기들끼리만 잘 살겠다고 옹졸하게 문을 닫아건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열린 사회, 다문화 사회를 지향한다. 제주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열린 사회로 나아가는 것은 필연이다. 거역할 수 없는 세계사의 흐름이다. 괸당 문화도 외지인, 외래인을 따뜻하게 끌어안을 수 있게 울타리부터 넓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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