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삶의 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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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주. 수필가

삶이 점점 불안해 진다. 바다가 좋아 바다가 보이는 곳에 터 잡아 살고 있지만 바다를 즐기며 사는 게 예전 같지가 않다. 밤이면 낚싯대 들고 밤바다를 산책하다 찌를 던져놓고 사색을 즐기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바다가 아닌 밤길마저도 편안하게 거닐지 못한다.

최근 들어 내 뇌리에는 ‘제주의 밤거리는 무섭다’는 인식이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동네 파출소들이 사라진 탓도 있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내는 사건 사고 소식들 때문인 듯하다. 절도나 폭행 사건쯤은 차치하고라도 성폭행이나 살인 사건의 빈도가 대도시 수위라니 밤길이 불안일 수밖에.

마음 놓고 나다닐 수 없는 삶의 터전, 그것은 삶의 자유를 제한 당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볼거리도 그림의 떡이 되어버리고, 인구 증가나 관광객 증가 수치도 달갑잖게 여기게 된다. 내 행복을 갉아먹는 짜증지수로 다가오게 된다.

삶의 편의는 후순위로 밀어 둔 채 외형적인 성장만을 추구해 온 결과다.

‘올 1분기 제주로 순이동 인구 4183명, 전년 비 37.8% 증가’, ‘관광객 연 1300만 시대 도래’, ‘2012년 1만2000대의 렌터카가 올 3월 기준 2만7774대로 2.3배 증가’, ‘땅값 상승률 전국 1위, ‘자동차 1인당 보유대수 전국 1위’….

근자에 접한 몇몇 보도 내용의 골자들이다. 이런 수치나 내용만 보면 실속이야 어떻든 엄청난 외형적 성장으로 와 닿는다. 문제는 삶의 질은 점점 삭막해진다는 데 있다. 삶의 매력이 떨어지면 그런 가시적인 성장 수치도 의미를 잃게 된다. 이런 외형적 성장이 호재가 되는 삶도 있지만, 이로 인해 겪게 되는 도민의 불편은 더 크다. 정치와 행정은 이런 삶의 불편을 예견하여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도민의 삶에 밀접한 범죄·사고·공해가 없는 ‘삼무도’ 건설 정책은 불안을 해소할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범죄는 이미 대도시 수위를 넘본다. 사건 사고는 범죄에 맞물려 일어나는 사안들이다. 공해도 청정에너지만으로 해결 될 문제는 아니다. 개발을 최소화하고, 도심 녹지 공간도 확충해야 한다. 중산간이나 해안 일대는 이미 대규모 공사들이 허가된 상태라니 때 늦은 대책이란 말이 나온다.

무사증 입국 제도가 범죄의 무방비를 노출하고 있다는 보도 내용도 불안을 가중시킨다. 이 제도가 악용되면서 제주는 불법 체류자 천지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경찰이나 출입국관리 부서는 불법체류자를 신고해도 서로 책임을 전가한다니 말문이 막힌다. 무책임의 극치다. 이들이 범죄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되는 경우 신원 확인이 어려워 범죄의 사각지대가 된다. 지난해에만 4353명의 불법 체류자가 들어왔다니 밤거리가 어찌 편안하겠는가. 이들의 취업과 알선에 연관된 조직이나 업체까지 잠행하고 있을 테니 지금도 몰래 들어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앞선 칼럼에서 ‘여가는 제주와 함께, 여생은 제주에서’란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이제는 기만적 표현인 것 같아 부끄럽다. 그런 삶의 공간이 점점 허물어지는 것 같아서다.

불안이 없는 편안한 삶의 터전. 그것은 적어도 백년은 내다 볼 비전과 계획이어야 한다. 폭넓은 여론 수렴과 공론의 과정을 거치면서 갈등은 최소화 하되, 취지는 일관되게 견지해 나가야 가능한 일이다. 명품은 연륜이 더해질수록 그 가치가 빛난다. 임시방편의 가시적인 성과만을 좇다보면 제주는 볼품없는 섬, 디스토피아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거주하는 사람도, 머물다 가는 사람도 행복한 낙원, 제주. 도민 모두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더해져야 그려낼 수 있는 유토피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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