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와 5·10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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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실.전 제주산업정보대 부학장

계절의 여왕 5월은 행사가 많은 달이다. 근로의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날, 석가탄일, 스승의날, 5·18 기념일 외에 5·10 유권자의 날도 있다. 공직선거법 제6조에 선거의 중요성과 의미를 되새기고 주권의식을 높이기 위하여 5월 10일을 유권자의 날로 정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은 날이 없지만 5월 10일은 정부 수립을 위해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보통·평등·직접·비밀투표를 실시해 현대 민주주의 국가를 건국했다는 의미에서 그 뜻은 크다.

8·15 해방 후에 우리나라의 문제를 우리가 결정하지 못하여 UN 감시 하에 총선거를 실시하여 정부를 수립하기로 했으나, 북위 38도선 이북에 진주한 소련군이 UN 한국위원단의 입북을 거부했다. 이에 1948년 2월 27일 UN 소총회에서는 선거 가능한 지역에서 선거를 실시하여 정부를 수립하기로 의결했다. 그래서 5월 10일 총선거 일이 다가오면서 국내 사정은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세력의 준동으로 혼란이 계속됐다.

그 와중에 제주도에서는 5월 10일 제헌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1948년 4월 3일 2시를 기해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350여 명이 무장하여 조천, 신엄, 애월 등 12개 경찰지서를 습격하여 경찰관 4명, 우익인사 8명을 살해하고, 경찰관 6명 민간인 19명에게 부상을 입혔으며 무장대도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을 일으키고 한라산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사건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장대와 경찰 간에 살벌한 보복과 학살, 방화가 이어졌는가 하면, 진압하는 군·경과 서북 청년들이 무자비한 과잉진압과 학살로 무고한 도민 2만5000여 명이 억울한 죽임을 당하고 지금도 그 상처는 아물지 않아 도민의 한으로 남아있다.

4월 3일 마을마다 뿌려진 삐라에는 ‘…매국 단독선거를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조국의 통일독립과 완전한 민족 해방을 위하여, 당신들의 고난과 불행을 강요하는 미제(美帝) 식인종과 주구들의 만행을 제거하기 위하여…무장 궐기했다’고 선언했다. 4·3을 주도한 세력들은 삐라에 미제 식인종(食人種)과 주구들의 만행이란 표현을 했지만, 사실상 미국은 식인종이 지배하는 미개국은 아니었다. 미국을 몰라도 너무 몰랐었다.

5월 10일 제주도의 3개 선거구 중 남제주군 선거구에서는 오용국 씨를 선출하여 제헌국회로 보냈으나, 북제주 갑구는 73개 투표소 중 42개 투표소, 을구는 61개 투표소 중 29개 투표소에서 이들 남로당 노선을 추종하는 5·10선거 반대세력의 방해로 선거 무효가 되고 제헌국회의원을 보내지 못했다. 정부 수립 당시의 제헌국회 의원 정수는 200명이었으나 제주도의 2개 선거구에서 선거를 하지 못한 관계로 제헌국회 의원은 2명이 모자란 198명으로 5월 31일 역사적인 제헌국회를 개원하고 7월 12일 헌법을 제정하여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했다.

만약 남제주선거구마저 5·10선거를 하지 못했다면 제주도는 선거 불가능한 지역이 되어 대한민국에서 제외될 수도 있었던 사항은 아니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1년 후 5월 10일 북제주 갑구와 을구에서 재선거를 실시하여 홍순영과 양병직을 국회로 보냈다. 그래서 제주도와 ‘5·10 유권자의 날’은 더욱 깊은 관련이 있다.

오는 5월 30일에 개원하는 제20대 국회에서는 68년 전에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제헌국회 의원의 애국정신을 본받아 국민의 존경을 받는 국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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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2021-03-05 15:19:29
이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바래왔던 제주 도민들, 4.3항쟁에 그 무엇으로라도 참여했던 제주도민을 무시하고 기만하는 글이네요. 이런 글이 제주일보에 쓰여져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