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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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문 영남대 교수 문학평론가/논설위원

온천지가 신록으로 물들어 있다. 지난 얼마동안 형형색색의 꽃들이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지만, 이제 짙푸른 녹음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저 찬란한 신록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이며, 신록이 지니고 있는 생명의 신비로움은 무엇인가.

사시사철 어느 한 순간 우리에게 중요치 않은 때가 없지만, 신록의 계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혜택은 끝이 없다. 만산에 가득한 신록을 바라보고 있으면, 경이로운 생명의 입김이 다가와 삶과 우주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 보게 된다.

이양하가 수필 ‘신록예찬’에서 잘 묘사해 주고 있듯이, 신록은 아름다운 꽃들과 같이 찬란한 색채를 지니지 못하고 비록 소박하고 겸허한 빛이라 할지라도 그 어느 아름다움에도 뒤지지 않는다. 신록은 우리의 몸과 마음 구석구석을 씻어내어 준다.

이양하에 의하면, 신록은 “우리의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慰安)을 주는 이상한 힘”을 지니고 있고, 이것은 곧 신록이 지니고 있는 생명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연은 언제나 우리에게 생명의 외경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인간의 허다한 “욕망과 굴욕과 고통과 곤란”을 가라앉힌다. 필연적으로 인간은 생명에 둘러싸인 살아 있는 생명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쉼 없이 다른 생명과 관계 맺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간이 관계를 고민할수록 서로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가고 더 진실한 관계란 생명에서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생명에 대한 인간의 윤리란 다른 생명에 대한 무한히 확대된 책임감에서 찾아질 수 있다. 인간은 자기를 도와주는 모든 생명을 도와줄 필요성을 존중하고 살아있는 어떤 것에게도 해를 끼치는 것을 두려워할 때에만 비로소 진정으로 생명을 사랑하는 윤리적 존재가 된다. 인간은 이 생명 혹은 저 생명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으로서 존재하는지 물어야 하며, 또한 그것이 지니고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느껴야 하는 것이다.

생명은 그 자체로서 신성한 것이다.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서 존중 받아야 한다는 동등성의 원칙과 차등성의 원칙을 동시에 적용받는다. 그래서 어느 생태계에서든 생명의 서열 문제가 등장하고 불가피하게 생명을 해칠 수밖에 없을 경우에는?윤리적인 책임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발생하게 된다. 자기 생명에 대해서처럼 다른 모든 생명에 대해서 동등한 생명의 외경을 인정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생명의 윤리는 A. 슈바이처의 말대로 내 안에 그리고 내 밖에 있는 ‘생명에의 의지’에 대한 외경이다.

여기서 의지라는 말은 인간 자신은 물론 세상의 다른 생명 존재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다. 인간의 측면에서 생겨난 의지라고 이해될 수 있지만, 다른 생명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서 생명의 의지를 인간에게만 국한해서 볼 수 없음은 명백하다.

결국 생명에의 힘과 의지라는 것은 모든 생명체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생명의 유지라는 본능적인 힘으로 정의될 수 있다. 저 신록 속에서 우리가 보편적이고 본능적인 생명의 힘을 보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연에서든 인간에서든 생명 없는 세계와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인간과 자연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은 생명의 순환 고리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그 활동의 지속성은 이루어진다.

지금 우리가 온전히 살아 갈수 있는 것은 과학과 기술의 힘에 의한 것만이 아니다. 저 신록이 우리에게 주는 생명력과 그에 대한 외경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과 세상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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