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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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성. 재 뉴질랜드 언론인

어렸을 때 누구나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로 시작하는 옛날이야기를 한두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아득한 옛날을 강조하기 위해 쓰는 상투적 표현이다. 하지만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든 먹든 한반도에 담배가 들어온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616년에 담배가 처음 들어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리고 1621년부터는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지면서 너나없이 피울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17세기 중반 제주도에 표착했던 네덜란드인 하멜도 귀국해서 쓴 표류기에 조선인들이 4, 5세 때부터 담배를 배우기 시작해 남녀노소 모두 즐겼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그때도 담배를 피울 때 위아래는 꽤나 따졌던 모양이다. 지체 높은 양반들은 기다란 장죽을 입에 물고 거드름을 피웠고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자리를 보아가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한국인들은 담배를 애용했던 것 못지않게 담배 인심이 좋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담배를 꺼내면 먼저 옆 사람에게 권하기도 하고 담뱃갑이 비면 스스럼없이 옆 사람에게 손을 내밀기도 하는 게 한국인들이다. 외국에 갔다 오는 사람들이 면세 담배를 사다가 선물로 주는 일도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담배 한 대로 엮어가는 끈끈한 정이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바뀌었다. 담배는 지구촌 어디에서도 옛날과 같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인류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으로 지목된 지 오래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의 흡연자는 10억여 명에 달하고 이들 가운데 80%는 소득기준으로 할 때 중하위권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담배를 많이 피운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다. 팍팍한 삶을 담배로 위로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무지로 인한 오용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담배로 인한 해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흡연자들의 절반 정도가 담배로 인한 질병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전 세계적으로 담배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매년 600여만 명이나 된다. 500여만 명은 자신이 피운 담배 때문에, 나머지 100여만 명은 남이 피운 담배, 즉 간접흡연 때문에 죽는다. 그리고 만병의 근원이 되는 담배로 인한 의료비 부담은 국가에서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 등골이 휠 만큼 엄청나다.

이런 사실만 보아도 담배를 멀리 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해진다. 자신의 건강 뿐 아니라 가족과 이웃들을 위해서도 담배는 끊어야 하는 것이다. 각국 정부가 금연정책을 강화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계몽도 하고 흡연의 폐해를 보여주는 충격적인 사진을 담배 갑에 새겨 넣기도 한다. 또 계속해서 가격을 올리는 식의 지갑 조이기 작전을 동원하기도 한다. 뉴질랜드는 가장 공세적으로 금연정책을 펴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오는 2025까지 금연 국가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힌 적도 있다. 이 세상에서 담배라는 식물이 자취를 감추지 않는 한 담배를 완전히 몰아내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 그만큼 노력한다는 뜻이다.

최근 새 예산안을 내놓으면서 뉴질랜드 정부는 담뱃세를 매년 10%씩 올려 현재 20달러(약 1만5900원) 하는 담배 한 갑을 4년 뒤에는 30달러(약 2만3840원) 선까지 올려놓겠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금연지역을 계속 확대해나감으로써 흡연자들의 설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한국에서 비행 청소년들이 그랬던 것처럼 조만간 화장실에 혼자 숨어서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한국도 눈여겨볼만한 부분이다. 담배는 이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옛날이야기 속에 묻어버려도 좋은 달갑지 않은 유산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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