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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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명숙

라일락 향기 가득한 봄날, 여섯 달배기 외손녀가 큰딸의 품에 안겨 미국에서 왔다. 미국 남부도시 뉴올리언스에서 달라스공항을 거쳐 장장 열일곱시간의 긴 비행 끝에 제주 할미 집에 도착했다. 마중나간 공항에서 큰애는 피곤한 기색으로 얼굴이 반쪽인데 아가는 웬걸 할미를 반기는 듯 둥글둥글한 눈동자에 웃음이 가득하다. 낯가림을 하면 어쩌나 했는데 그건 괜한 기우였다.


출산 때 미역국 재료를 챙기고 미국에 얼마간 머물며 아가와 눈맞춤을 했었지만 그 기억이 남아 있을 리는 없을 텐데 낯설어 하지 않은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 생명을 점지할 때부터 보이지 않는 영혼의 오묘한 섭리가 그런 것인가. 아직 배변도 가리지 못하고 걸음마도 익히지 못한 아기인데 우주적 위상에서 보면 흠결이 없는 아기천사일지 싶다.

 

생명을 점지한 삼신할미든, 우주를 창조한 신이든 생명을 주실 때에는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도록 재능과 사명감을 부여했으리라. 일찍이 중국의 시성, 이백도 장진주에서 ‘하늘이 생명을 주심은 나의 재능이 어딘가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읊조리지 않았던가.


아가는 아직 말도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한국식으로 “아공~, 까꿍~”하며 눈을 맞추면 알아듣는지 옹알이를 따라하는 게 기특하다. 남편과 단둘이 사는 집안에 아기천사가 웃음보따리를 선사한다. 미국 사위도 휴가를 받아 왔고, 유학 간 막내까지 방학에 귀국해서 휑하던 집안이 북적북적하다.

 

한국말에 서툰 사위와는 한국말과 영어와 보디랭귀지로 말하다보면 산나물 비빔밥처럼 섞이고 버무린 맛이 매콤달콤 미소를 머금게 한다. 체격이 큰 하얀 피부의 사위가 식탁에 앉으면 씨암탉을 잡아주지 못하는 장모가 무안하다. 사위 입맛은 큰애가 알아서 차려줄 때 나는 손녀의 벗이 된다. 순수한 아가의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풍파에 찌든 이 할미가 오히려 부끄러워진다. 물질적 욕심과 이기심에 남을 배려하지 못한 속마음이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붉어진다.


5월 어린이날, 손녀는 아직 어려서 야외로 놀러갈 수 없기에 집 근처 북카페를 찾았다. 실내는 청결하고 서가에는 정리가 잘되어 있었다. 조용하여 책읽기에 좋은 분위기이며, 그 공간에는 우리가족 뿐이었다.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육아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큰애는 낮은 소리로 소곤거렸다.


“아가는 커서 무엇을 하면 행복할까?”


손녀는 제 어미와 반짝이는 눈빛으로 응시하더니 무언의 교감을 나누듯 옹알이를 한다. 이 손녀가 살아갈 미래사회는 어떤 사회가 될까, 나 역시 궁금하여 서가에 꽂혀 있는 미래사회에 관한 책을 펼쳤다.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는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20억 개의 일자리와, 펀드매니저 등 재화를 벌기위한 직업은 사라진다고 단언한다. 교육에 있어서도 창의력, 사고력, 협업, 통섭, 네트워크형 인재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의 인기직종인 의사나 법률가 등도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 예견한다. 인공지능 로봇이 사람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분석하고 정확하게 판단하며 깔끔하게 처리함으로써 인간은 그 분야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세상, 부정부패가 사라진 투명한 세상이 될지 몰라도 인간의 따스함이 사라질 것 같아 불안하다.


그러나 융합의 하이브리드 시대, 미국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에게서 태어난 손녀가 어쩌면 지구촌의 다문화 사회에서는 그게 더 장점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인다.


유모차에서 잠자다 깬 손녀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손녀가 할미를 알아보고 웃는다. 눈빛이 반짝인다. 그 웃음의 눈빛, 그 속에 담긴 영혼의 메시지, 신이 전해주는 수많은 언어들이 고스란히 쌓여 있겠지. 그 눈빛 언어들을 해독할 수는 없지만 손녀가 할미를 위로하는 것만 같다.


“할머니, 걱정 말아요. 미국과 한국, 아니 세계를 누비며 행복한 세상 만들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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