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진박 비박
친박 진박 비박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고한성. 재 뉴질랜드 언론인

한국의 정치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계파정치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김대중과 김영삼이 야당을 이끌던 시절에는 동교동계, 상도동계라는 말이 훈장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야권에 몸담은 정치인들은 그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는 걸 영광으로 알았다.

군사독재의 암담한 시절에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폐해도 심각했다. 자기 보스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근대적 충성 경쟁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도덕성이나 능력보다 줄서기가 중요하다는 전도된 가치체계가 모두의 뇌리를 파고들게 된다. 계파정치의 역사를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계파정치는 일본식 파벌정치를 그대로 답습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일본식 파벌정치는 옛날 일본에서 봉건영주가 가신을 보호해주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보스의 정치적 주장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보스는 그의 미래를 책임지고 키워주는 식이다. 한국의 계파정치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작금의 상황을 보면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친박, 진박, 비박 등으로 복잡하게 편을 갈라 밀고 당기는 형국이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는 여당이 친이와 친박으로 나뉘어 으르렁거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놓고 친노와 비노의 힘겨루기도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다. 민주화의 바탕 위에서 한 단계 도약하려는 한국 정치의 발목을 잡는 계파정치의 현주소다.

정치 선진국 뉴질랜드는 의원내각제의 나라다. 선거에서 이긴 다수당이 정권을 잡게 되고 그 정당의 대표가 총리가 되는 시스템이다. 존 키 총리도 그가 이끄는 국민당이 지난번 선거에서 정권을 창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총리가 될 수 있었다. 이는 국민당 집권 기간에 의원들이 뜻을 모아 당 대표를 바꾸면 총리도 자연스럽게 바뀐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총리를 중심으로 한 국민당의 결속력은 이외로 단단하다. 계파라는 건 있지도 않고 총리에게 공개적으로 반기를 드는 의원도 보지 못했다. 이는 야당도 마찬가지다. 설령 의견을 달리한다 해도 당 대표의 지도력에 저항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이는 당 대표나 총리를 단순히 하나의 인격체로만 보지 않고 제도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또 민주주의 근간인 다수결과 승복의 미덕을 충실히 실천하는 풍토가 확립된 덕분이기도 하다. 문을 걸어놓은 회의장 안에서는 자기들끼리 얼마든지 싸울 수 있다. 하지만 결론이 내려지고 지도자가 나갈 방향을 가리키면 보란 듯이 모두 하나가 된다. 정치적 견해를 같이 하는 사람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만든 정당은 그런 논리로 움직이는 조직인 것이다. 만일 거기에 항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조직에서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지금의 새누리당도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 한국 정치인들이 그토록 매달리는 계파적 시각에서 본다면 모두 친박이 돼야 한다. 그리고 청와대와 여당이 두 집 살림을 하는 어색한 동거도 청산해야 한다. 갖가지 직함을 가진 지도자가 너무 많은 것도 정상적인 건 아니다. 토론이 없는 정당도 건강하다고 할 수 없지만 당내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사사건건 다른 목소리를 내는 조직도 미덥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정당이라는 조직의 존재이유와 다수결의 원칙, 승복의 미덕만 가슴에 새겨도 문제는 얼마든지 바로 잡을 수 있다. 그게 한국사회가 그토록 갈구해마지 않는 정치 선진화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