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누비처네’
2004년 세상을 떠난 목성균의 수필 전집. 산림 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후 57세에 등단해 9년 남직 수필을 쓰다가 타계했다. 사후에야 작품의 진가를 주목해 수필계의 기형도라 불린다. 생활의 편리와 무관심으로 인해 지금은 놓치고 있는 과거의 편린들을 작가만의 따뜻한 감수성으로 재해석한다. 짧은 글에서도 영화를 보는 듯한 맑은 영상미를 즐길 수 있다. 

 

▲대담자
김희정=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과 독서회를 만들어 세계 명작들을 읽었고, 결혼 후에는 연년생 아이들을 키우며 동화 읽는 어른 모임(꿈타래)에서 10년 이상 어린이 책과 함께했다. 현재 서귀포논술연구회에서 독서활동 중이다. 남원읍 하례리에서 귤 농사를 짓는다. 따뜻한 서귀포에서 자연과 함께 생활하는 것을 감사하며 산다.


문금순=서귀포시민의책위원회 위원으로 4년간 활동하고 있다. 학원 강사와 도서관 동아리 활동, 논술지도 등을 하며 책과 가까이하는 삶을 살았다. 지금도 도서관 활동을 열심히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주말에는 귤 농사를 짓는 등 바쁘게 산다. 거친 바람, 억센 땅의 대명사인 모슬포에서 태어나 현재는 중문에서 살고 있다.

 

▲그리움으로 남은 아버지의 깊은 발자국
한라산이 바로 코앞에서 한달음에 올라오라 손짓하며, 깊은 골짜기의 속살까지 선명하게 내보인다. 고요하게 맑은 날이다. 잠시 서서 저 골을 끼고 오르내렸을 발자취들을 떠올려본다. 설문대 할망의 전설이 이야기되던 때부터 내 기억에도 있는 약 50년 동안 한라산은 수없이 많은사람들을 초대했을 것이다. 그들을 만난 사연을 한라산은 기억하고 있을까. 아니. 나는 50년 동안 내가 만난 사람들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까. 맑고 푸른 날이 한라산과 만나니 깊은 골짜기와도 같이 시원하고 상큼한 상념을 제공한다. 이 느낌으로 ‘누비처네’(누빈 포대기라는 뜻)를 이야기한다면 다정다감했던 시절에 쉽게 젖어들 것 같다.

 

 

   
 

문금순(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 이하 ‘문’): 목성균 선생의 ‘누비처네’의 매력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김희정(이하 ‘김’): 엄마, 아내, 며느리 그리고 딸로서 살다 보니 문득문득 가슴 뭉클한 순간을 경험하곤 합니다. 이전에는 사는 게 바빠서 모르고 지냈는데 요즘 와서는 그 뭉클함이 너무나 소중해 흘러가게 내버려두면 안 될 것 같아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간직하고 싶은 뭉클함을 진실의 힘으로 엮어놓은 것 같습니다.


문: 읽고 난 후 느낌은 어땠나요? 저는 여느 수필집과 다른 감동을 느꼈는데요….


김: 먼저 구성이 탄탄합니다. 수필 하나하나가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했습니다. 문체는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이 정갈하고 시와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매력은 함축적인 이미지로 표현된 영상미였습니다. 


문: 작품의 예를 들어주시죠.


김: 예를 들면 ‘누비처네’란 수필에서 젊은 신랑은 술병과 고기를 들고, 아내는 포대기로 아이를 업고 처가에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추석 대보름 달빛 아래, 가을 들녘을 가르는 냇물은 졸졸 흐르고, 어린 것은 펄쩍펄쩍 뛰면서 키득키득 웃고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더 이상의 천국은 없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또한 ‘세한도’도 한 폭의 그림입니다. 집안 어른께 세배드리러 가는 길, 강 건너편에 있는 나룻배, 강가 사공의 오두막집에서 하얗게 피어오르는 저녁연기, 여기에 “사공~~, 강 건너 주시오.”라는 단 한 번의 외침. 저자는 이 장면에 아버지의 완강함과 사공의 존재가치를 모두 표현합니다. 짧은 긴장감과 침묵과 스산한 분위기로 말이죠. ‘배필’이란 작품도 남다릅니다. 해산한 중대장 사모님께 링거를 놓으러 간 풋풋한 위생병은 핏기없는 산모의 하얀 팔뚝과 맑고 투명한 얼굴에서 아버지께서 점찍어 놓은 배필의 얼굴을 발견합니다. 설렘과 기대가 어찌나 절묘하던지 저도 작품 속의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했습니다. 어때요, 그림이 그려지지 않나요?


문: 네, 그림처럼 다가옵니다. 그런데 이런 개성 있는 작가가 왜 퇴임 후에야 글을 쓰게 되었을까요?


김: 저자는 문학 소년이었지만 학업 중단과 사업 실패 등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낙향해 산림공무원이 되었는데, 공직생활이 끝나고서야 유년의 꿈을 떠올려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마와 싸워야 했죠. 실제로 작품 활동을 한 기간은 4~5년 정도인데 병상에서 눈을 감기 직전까지 글을 썼다고 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글이 알려지게 되었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수필계에선 탁월한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네요.


문: 그의 글에 슬픔과 애잔함이 묻어나는 이유가 있었군요. 어떤 분들이 읽으면 좋겠습니까?


김: 살다 보면 외롭고 고단하여 위로받고 싶을 때가 있을 겁니다. 그때마다 한 번씩 꺼내 읽으면 좋을 듯합니다. 괜찮다고, 잠시 쉬어가라고 하는 작가의 음성이 들릴 거예요. 아마 본받고 싶고, 배우고 싶은 어른을 만난 듯 반가울 겁니다. 특히 중년 아버지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문: 어떤 의미인가요?


김: 과거에는 힘들고 팍팍한 삶이었지만 아버지들의 권위와 따뜻함이 있었죠. 겨울밤 냉기를 몰고 들어오셔서 책 읽는 아들을 위해 등잔의 심지를 갈아주시던 모습, 그리고 산골 초가집 부엌 기둥에 걸려 있던 명태 한 코에서 집안 대주인 아버지의 따뜻한 권위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삶은 풍요로워졌지만 아버지의 삶이 돈으로 짓눌려 있습니다. 돈이 권위요, 배려처럼 느끼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삶이 어디 돈만으로 꾸려지나요. 그때나 지금이나 따뜻하면서도 강인한 아버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책임감이라는 무게와 배금주의 사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에게 감사와 응원을 담아 추천하고 싶네요.  


문: 작품집이 두꺼운데 특히 추천할 만한 수필이 있다면요?


김: 앞서 얘기한 명장면들은 잊지 못할 것 같고요, ‘아버지의 강’, ‘명태에 관한 추억’, ‘사기 등잔’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돈독에 대하여’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보기가 좋다는 것은 시각적이고, 돈독해 보인다는 것은 마음의 느낌이다.” 결국 저자가 추구하는 이상향은 따뜻한 마음이었다고 봅니다. 작가는 아버지의 따뜻하지만 강인한 마음을 동경하고 그렇게 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가 그리움으로 품었던 아버지의 깊게 패인 발자국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