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제 성곽 허물어 제주항 골재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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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북성문 철거...20년만에 성체 사라져
▲ 일제가 1914년 토지조사사업으로 기록한 제주성 지적도. 제주성곽은 붉은색 타원형으로 표시됐다. (칼러 그림은 제주성 지적도에 용도 별로 색을 입힌 모습.)

전국 해안과 내륙 등 요충지에 세워졌던 읍성(邑城)은 일제시대인 1910년 조선총독부의 1호 법률인 ‘조선읍성 훼철령’에 따라 철거돼 대부분 제 모습을 잃었다.

일제는 읍성을 한민족의 단합된 힘과 항전의 상징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제주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1913년 북성문을 시작으로 1914년 연상루·진서루·중인문을 허물어 버렸다. 이어 소민문, 정원루 등이 사라졌고 1923년에는 동성을 철폐하고 측후소를 세웠다.

1926년부터 일제가 동·서부두를 축조하고 산지포를 매립하는 제주항 축항공사를 벌이면서 제주성 3면의 성담 상당 부분을 바다에 매립해 성체가 사라져 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주성의 가장 마지막 형태를 볼 수 있는 실측 지도와 사진 자료는 일제가 남긴 것이다.

1914년 총독부가 토지조사사업으로 제주성의 지적도를 만들면서 성의 실체가 면밀하게 드러났다.

이를 토대로 성안에는 과거에부터 동서를 가로지르는 넓은 도로가 있었고, 성벽 돌출 구조물로 성곽을 견고히 하고 적을 측면에서 공격할 수 있는 21개의 치성이 표시됐다.

이와 함께 일제가 제작한 지적도를 통해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성내 토지의 소유관계를 확인 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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