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와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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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택진 논설실장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중략)/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 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시인 함민복의 ‘부부’라는 시다. 표현대로 부부로 살아간다는 건 긴 상을 들고 좁은 문을 나서듯 서로 조심조심 발걸음을 내딛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실로 간단치 않은 일이다. 사실 남과 남이 만나 한 몸을 이루어 산다는 것은 아무리 그게 세상의 섭리라 할 지라도 어려운 일임에 틀림 없다. 흔히들 부부 사이엔 촌수가 없어 무촌(無寸)이라 한다. 그 만큼 가깝기도 하고 또 멀기도 한 게 부부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고 하듯이, 부부 사이도 그렇다. 하루라도 없으면 못 살 것처럼 굴다가도,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남이 되고 더러는 원수지간이 되기도 한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만해도 이혼을 모르고 살아왔다. 사별로 인한 재혼은 있었지만, 갈라선다는 건 어지간해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다. 지금은 같이 든 상을 탕하고 내려놓은 사례가 숱하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이들도, 황혼의 길목에 접어든 노부부에게서도 그게 비일비재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10만9200쌍이 부부의 인연을 끊었다고 한다. 특히 제주지역은 언제부턴가 ‘이혼의 고장’이란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붙어다니고 있다. 역시 통계를 보면 제주지역에서 매년 2000쌍에 가까운 부부가 이혼하기 위해 법원의 문을 노크하고 있다.

물론 이혼을 무조건 반대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주위를 보면 잘못된 선택을 청산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사는 이들도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가정의 해체를 초래하는 이혼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일생 최대의 결정이어야 한다.

▲설마설마하던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Brexit)’가 현실화하면서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휘청거리는 세계 경제는 우리에게도 ‘발등의 불’이다. 브렉시트는 일종의 ‘영국과 EU 간 이혼’에 비유될 수 있다. 말하자면 영국이 43년간 함께한 EU와의 결혼을 청산하고 이혼 도장을 찍기로 한 것이다. 그 나름의 사정과 이유가 있겠지만, 그게 최선의 선택었을까? 백년가약을 저버리고 같이 든 상을 탕하고 내려놓은 브렉시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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