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서란(新西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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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한성. 재 뉴질랜드 언론인

제주와 뉴질랜드는 닮은 데가 많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이 그렇고 농업, 어업, 관광 등에 초점을 맞춘 산업구조가 그렇다. 관리만 잘 하면 오랫동안 청정 브랜드를 같다 붙일 수 있는 흔치 않은 지역 중 하나라는 점도 같고, 제주 사람들이 신서란이라고 부르는 식물이 잘 자라는 것도 비슷하다.

신서란은 초록색 잎사귀가 검객의 칼날처럼 날렵하게 뻗은 다년생 풀이다. 어렸을 때 텃밭에 들어가면 돌담을 따라 늘 푸른 모습으로 가지런히 심어져 있었다. 하지만 관상용은 아니었다. 밧줄이나 노끈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원료였다. 섬유질이 단단하고 강해 짠물에도 잘 삭지 않았다. 그게 뉴질랜드가 원산지라는 걸 안 것은 한참 뒤였다.

뉴질랜드에서는 삼, 아마, 하라케케 등으로 불리는 백합과 식물이다. 뉴질랜드 어디를 가도 쉽게 볼 수 있다. 큰 것, 작은 것, 노란색이나 분홍색 줄무늬가 들어간 것, 붉은 빛이 도는 것 등 종류도 다양하다. 옷, 그물, 돗자리, 밧줄 등의 원료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약재로도 쓰일 만큼 실용성이 뛰어나고 보기도 좋다. 그래서 뱃길을 따라 세계 여러 지역으로 꽤 많이 전파됐다. 하지만 이 풀에 신서란이라는 원산지 이름을 갖다 붙인 건 제주 사람들이 아마 유일할 것이다. 정확한 연유는 알 수 없지만 흥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서란은 중국인들이 뉴질랜드를 일컫는 말이다. 뉴질랜드의 한자 표기다. 도이칠란트를 독일(獨逸), 잉글랜드를 영국(英國), 에스파냐를 서반아(西班牙)라고 한 것과 같다. 글자를 쪼개 보면 ‘뉴’가 ‘신’이고 ‘질랜드’가 ‘서란’인 셈이다. 그러니까 제주 사람들이 부르는 신서란이라는 이름은 정확하게 그 풀의 원산지만을 지칭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또 신서란이 중국인들에 의해 처음 제주에 전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시기는 19세기 후반 이후일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인들이 뉴질랜드까지 처음 진출한 게 지난 1840년 2월 와이탕이 조약 체결로 뉴질랜드라는 나라가 지구상에 태동할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가난에 찌든 고향땅에 가족들을 놔둔 채 금광을 찾아 태평양을 건넜던 것이다. 70년대에 한국인 근로자들이 개발붐이 이는 중동으로 날아갔던 것과 비슷한 이유다. 이렇게 해서 뉴질랜드 땅에 흘러든 중국인들의 숫자가 1869년에는 2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 중 다수는 금광에서 노동을 하다 때가 되면 귀국길에 올랐다. 이 때 귀국선에는 이들이 받은 노동의 대가와 함께 실생활에 다양하게 쓰이는 뉴질랜드 삼도 고향 사람들에게 전할 귀국선물로 실려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일부는 이들이 탄 선박이 풍랑이나 다른 이유로 제주 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됐을 때 그들 손에 건네졌을 것이다.

오랜 항해에 지친 사람들이 신선한 먹을거리나 물을 구할 때 물물교환 품목이나 답례품, 선물 등으로 사용됐을 것이란 얘기다. 이 때 언어장벽으로 인한 원활치 못한 의사소통이 원산지를 식물명으로 둔갑시킨다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닌 것이다. 맨 처음 호주 대륙에 도착한 탐험가가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동물을 보고 깜짝 놀라 원주민에게 이름을 물었을 때 ‘나는 모른다’는 뜻으로 ‘캥우루’라고 한 말을 ‘캥거루’로 잘못 알아듣고 덥석 동물명으로 믿어버린 것과 비슷한 경우다. 물론 이런 얘기는 어디까지나 추론일 뿐이다. 그러나 제주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신서란으로 뉴질랜드와 인연을 맺고 있다는 건 음미해 볼 만하다. 섬에 갇혀 사는 것처럼 보이는 제주 사람들도 자연과 환경이 가르쳐주는 대로 일찍이 세상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방법은 나름대로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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