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을 발휘해서 보기만 좋게 지은 건축물의 가치에 동의하지 않는다. 건축물은 주어진 터와 거기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관계맺음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외형은 중요하지 않다.’(정기용 건축가)

 

서귀포 기적의도서관은 평생 건축을 천직으로 삼으며 공공건축에 힘썼지만 정작 자신의 집은 단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던 고(故) 정기용 건축가(1945~2011)가 설계한 작품이다.

 

그는 소나무가 우거진 문부공원을 처음 찾았을 때 주변에서 나무를 베어내면 된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소나무를 중심에 두고 건물을 도너츠처럼 에워싸면 나무를 살리고도 충분히 아름다운 건물을 지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가 의도한 대로 건물이 완성되자 도서관 내부에서는 어디에서나 중앙정원에 있는 소나무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돈을 안들이고 건물 안에 소나무 정원이 조성된 셈이다.

 

서귀포 기적의도서관은 2004년 5월 5일 서귀포시 동홍동 문부공원 내 1만6190㎡에 건축면적 741.07㎡, 연면적 911.48㎡ 규모로 개관했다.

 

1층은 열람실, 시청각실, 영유아실, 다목적실, 휴게실, 사무실이 2층은 열람실과 멀티미디어 코너를 갖추고 있다.

 

건물 동쪽과 북쪽, 서쪽으로 수많은 창을 냈고, 실내도 많은 빛을 받아내기 위해 중앙정원을 향해 채광창을 만들었다.

 

건물 오른편으로는 입구를 유도하는 담장, 왼편으로는 비스듬히 북카페가 투명하게 유리로 돼 있다. 타원형의 몸체로부터 뻗어나온 현무암의 회색 벽과 원형 기둥, 입구와 나란히 있는 유리면은 서로 대비되면서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서가는 타원형 곡면을 따라 배치됐다. 이용자들이 도서관 전체를 한바퀴 돌며 각 공간을 흥미롭게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건물 외관은 짙은 회색, 기본 골격은 철골조로 지어졌다.

 

이는 건물이 가까이에서나 멀리에서 너무 또렷한 건축으로 인식되기보다는 회색빛 현무암의 작은 언덕처럼 보이길 원했던 건축가의 의도다.

 

건물은 그 존재감을 과시하기보다는 눈에 잘 띠지 않도록 사람과 나무와 주변 풍경의 배경으로 물러서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건물 외관은 회색 계열이 선택됐지만 지붕면은 제주에 흔한 화산재 ‘송이’를 흩뿌려놓은 듯 적갈색으로 마감하면서 때에 따라 건물을 전체적으로 생기있게 만들었다.

 

한편 정기용 건축가는 서귀포 기적의도서관을 포함해 전국 6곳에 어린이를 위한 기적의도서관을 설계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2007년)와 ‘박경리 문학의 집’(2010년)도 그의 작품이다.

<김문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