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고 가려서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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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 칼럼니스트

눈·귀·코·혀·피부 오관(五官)이 일으키는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이 오감(五感)이다.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만지는 느낌은 즐거움과 기쁨을 샘솟게 한다.

어느 하나만 온전치 않아도 불만을 갖게 되고, 심하면 정서적으로 균형이 무너져 우울하고 심성이 어두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인데도 얼굴이 밝은 사람을 대할 때면 경외심을 갖게 된다.

눈을 깜빡이며 웃음으로 다가오는 해맑은 표정은 자체로 감동이다. 그도 자연의 풍광을 즐기고 사람들 속에 희열을 누리며 산다. 인고의 나날 속에 터득한 새 삶의 지혜일 것이다.

그런 이에게선 불행의 그늘을 찾아볼 수 없다.

삶이란 볼 것 다 보고, 들을 것 다 듣고, 만질 것 다 만진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다.

얼마 전부터 낮고 작은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가는귀먹는 것 같다. “뭐라고요?” 하는 전에 않던 소리가 튀어나오는 일이 잦다. 되묻는 것이다. 까딱하다 듣고 보는 것 가운데 택일(擇一)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TV를 보는데도 답답해 볼륨을 정도 이상으로 높이게 되면서 아예 귀를 닫아 버리기도 한다. 그래도 그림으로 봐 소통에 문제가 없을뿐더러 그 사건 사고라는 것들, 속속들이 알려고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좋은 것들이다.

음악을 들을 수 없는 곤란함이 있으나, 다행히 그쪽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문제는 소리를 잃으면 어쩌나 하고 염려하지만, 그도 문제 될 게 아니다.

아들이 아주 작은 보청기가 나온다며 권해도 일언지하에 사양했다. 아직 그런 이물감을 거둬들여야 할 만큼 나쁘지 않다는 믿음이 있다. 적당히 답답한 수준이다.

설령 만성중이염을 앓아 온 왼쪽이 절벽이 된다 해도 한쪽은 틔어 있을 테니까. 청력의 몇 %만 남아 있어도 걱정할 게 아니다. 평생 살아 온 경험칙이 있어 거들 것 아닌가. 즐겨 먹고, 눈으로 보며 환호하고, 역겨운 냄새를 피하고, 봄볕의 다사로움과 손녀의 볼에 입 맞추는 보드레함을 느낄 수 있으면 된 것이다.

소음으로 시끌벅적한 세상이다. 거리를 질주하는 찻소리, 살아가는 사람들의 악다구니로 가득한 시장 동네 삶의 현장은 그래도 좋다. 삶이 있는 한, 삶 속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들이니 삭여야 한다. 한데 조금만 귀를 세워도 듣기 싫은 소리들로 넘쳐나는 세상이다.

사건사고를 놓고 상세하게 늘어뜨리는 소리가 제일 싫다. 대충 사실만 전하고 그치면 좋은데, 그 전말을 시시콜콜 다 쪼개고 발겨 가며 토를 다는 얘기엔 토악질이 난다. 이때 유효한 게 가는귀먹은 사람의 아직 괜찮은 청력장애다.

이왕이면 좋은 음악이나 흥겨운 트로트 한 곡 듣고 앉았지, 세상사의 번잡한 속내에 끼어들고 싶은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다. 그러고 보니 귀 조금 막아서 좋은 세상이다. 소음이 차단되는 뜻밖의 효과가 있지 않은가. 실실 웃음이 나오는 까닭은 무얼까.

오늘 따라 장맛비가 제법 줄기를 이루며 내린다. 빗줄기는 시나브로 음향을 입히며 신이 났다. 동창(東窓)을 열어젖뜨리니 스멀거리며 밀려드는 빗소리.

내 귀, 아직 쓸 만한 모양인가. 장마철의 눅눅한 기분이 한순간에 걷힌다. 이러다 토라지면 들리던 바람소리도 비켜가곤 한다.

고르고 가려서 들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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