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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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군에 입대할 때가 1976년 봄이었다. 군 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는 1978년 겨울이었는데 우리 현대사가 긴박하게 돌아가던 때였다. 세상은 어렵게 돌아가고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던 시기에, 묘한 제목의 책이 눈길을 끌었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았다’였다.

그런대로 이름있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었다. 작가 이름도 당시에 관심을 끌던 남미(南美)의 작가 가브리엘 마르께스였다. 마르께스가 ‘백년간의 고독’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것이 1982년인데 그때가 1979년 쯤이니까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았다’는 별 관심을 끌지 못할 때였다. 특별한 관심없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남미 특유의 투계(鬪鷄)이야기, 오랫동안 주어지지 않는 연금 이야기, 소설의 주인공은 퇴역군인이요, 계급은 대령이었다.

군인이 용감하게 싸워서 진급할 수 있는 최고의 계급이다. 대령 이상의 계급은 전투와 관련된 게 아니라 정치와 관련된 것이다. 성실성이나 전투 등 공로로 따지면 최고의 계급에 올라간 셈이다. 국가로부터 연금을 받으면 그런대로 여유있게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연금과 관련해서 오랫동안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아무도 그에게 편지하지 않았다. 마르께스는 바로 그런 대령들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의 노벨상 수상작인 ‘백년간의 고독’의 주인공 역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었다.

열심히 싸운 사람이 대령이다. 그런데 당연히 받아야 할 무언가를 오랫동안 받지 못한 채로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대령이다. 대령은 수시로 낡은 제복을 꺼내 입어본다. 낡은 자존심이라 해도 버릴 수는 없다. 나는 그 대령들에 대하여 새롭게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요즘 동네 국립도서관에서 6·25전쟁 문서 전시회를 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오랫동안 비밀문서로 보관하다가 공개한 문서이다. 예민한 좌우 문제를 생각하면, 자칫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전시회이다.

전시된 자료들 중에 오래된 항공사진을 확대한 것이 있었다. 인천 상륙 당시 해변을 찍은 사진이었다. 흐릿한데도 세찬 물보라를 일으키며 해안으로 돌진하는 상륙정들이 긴박감을 느끼게 했다. 이제 그 해안으로부터 크고 새로운 무언가가 일어날 듯했다.

그 상륙작전으로 인하여 대단히 유명해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그렇게 유명해지는 동안, 많은 생명들이 그 해변에 이름 없이 흩어져 잠들어야 했다.

용감하게 열심히 싸운 전쟁 용사의 묘비는 전쟁터 한 구석에 이름 없이 세워지게 된다. 전투의 중심에서 열심히 싸운 그들은 살아남기가 어렵다. 진정으로 용감하게 싸운 전쟁 용사의 이름은 잘 알려질 수가 없는 법이다. 만일에 살아남았다면 대령 정도의 계급을 달았을 거다.

그 대령들은 오랫동안 연금을 받지 못한 채 기다리며 살아간다. 인천 상륙의 바다에 그리고 그 대령들에게, 우리는 별다른 관심도 편지도 보내지 않는다.

그런데 혼란스러운 우리의 시대가 정신을 차리려면, 그 바다에 흩어져 잠든 그들을 깨워야 한다. 오랫동안 아무런 편지도 받지 못한 대령들에게 편지를 보내야 한다. 그들에게 연금을 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대령들의 공로로 이름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조금 더 진실에 가깝게 지금 주어진 일을 하도록 하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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