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뉴월 장마엔 개역 한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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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택. 서귀포예총 회장

아열대지역의 최북단 탐라섬 제주도에는 특이한 장마가 있다. 뭍에서 장마라고 할 때는 보통 6월 말에서 7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오월장마만을 얘기한다.

그런데 탐라섬에는 절기와 계절에 따라 여러 장마를 맞이하게 된다. 가장 먼저 초봄에는 ‘풀도진마’라고 하여 고사리가 돋아나기 전, 대지의 만물이 잘 돋아나라고 일주일 정도 시작되는 장마를 말한다. 이어서 시작되는 게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는 ‘고사리마’이다. 이 마는 삼월 삼짇날을 전후하여 시작된다. 그러면 제주 산야에는 온통 고사리 꺾는 사람들로 산을 이룬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마가 장마라고 하는 오월 장마이다. 이 장마는 치자꽃 개화와 함께 시작되고 치자 꽃이 지고 매미가 울기 시작하면 장마가 마무리되면서 본격적인 육칠월 삼복더위가 백중까지 이어진다.

장마가 되면 한라산을 중심으로 산남과 산북의 날씨가 확연하게 다름을 느낄 수 있다. 일례로 서귀포지역에 안개가 끼고 가는 비가 내리면, 제주시에는 후텁지근한 불볕더위가 시작이 된다. 같은 탐라섬이라고 해도 이렇게 같은 시간의 기후 변화가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습도가 높아지고 잦은 비 날씨와 고온이 사람들을 어렵게 하지만, 대지의 생명은 이 시기에 튼튼하게 자라나 열매를 더욱 견실하게 맺기 때문에 이 계절에 장마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장마철 어린 아이들에게도 즐거움은 있었다. 어머니가 솥뚜껑에 햇보리를 볶아 한여름철 보양식인 ‘개역’이라는 미숫가루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월 장마가 끝나면 태풍이 다가온다.

그해 태풍이 오는지, 안 오는 지는 작물을 통해 알 수가 있다. 일반 동물들은 태풍이 오거나 위험이 감지되면 미리 피하는 습관이 있지만 식물은 이동할 수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해결을 한다. 경험으로 봐서는 제주토종 참깨라고 할 수 있는 ‘던덕깨’가 대표적이다. 참깨는 보리 수확이 끝나면 바로 파종을 하고 태풍이 내습하는 시기에 수확을 하는 대표적인 작물 중 하나이다. 그래서 필자는 참깨가 개화하는 7월이 오면 모슬포지역 알뜨르 비행장 주변에서 ‘던덕깨’의 개화 모습을 관찰한다. 참깨가 줄기 끝 부분까지 개화 상태가 고르면 그 해에는 태풍이 불지 않지만, 개화되는 과정에서 줄기 중간 부분부터 꽃이 시들거리면 분명 큰 태풍이 내습을 하곤 했다. 즉, 참깨 농사가 풍년 드는 해에는 태풍이 없다는 얘기이다.

이렇게 참깨 수확이 끝나면 마늘 등 밭작물 재배가 이어지고 한동안 가을 과실들이 결실하라고 일정한 가뭄을 지나 9월 말이 되면 가을장마인 ‘슬마’가 잠깐 시작되면서 탐라섬의 장마도 끝이 난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장마를 임우(霖雨)라고 하였다. 즉 임(霖)을 장마라고 한 것이다. 국립국어원 자료에 보면, ‘댱마’라는 단어가 16세기 나타났고, ‘쟝마’는 18세기에 확인되었다고 하였다. ‘댱’은 길다의 장(長)을 의미하지만, ‘마’에 대한 어원은 분명하지가 않지만, 물(水)이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하였다.

필자는 장마가 되면 ‘세벨코지’에서 잡아온 자리로 만든 자리물회가 그립고, 어머니가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정성스럽게 만들어 개어주셨던 ‘개역’향이 그립다. 이 장마가 끝나기 전에 집안 식구들 모여 앉아 개역을 만들어 먹는 것도 탐라의 향수를 기억하는 소중한 시간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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