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한’ 명령이 ‘너무 성급하게’ 실행되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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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회 제주대 교수 독일학과/논설위원

‘성급한’ 명령이 ‘너무 성급하게’ 실행되었구나!

이는 1832년에 간행된 ‘독일의 셰익스피어’ 괴테의 ‘파우스트. 비극 제2부’에서 주인공 파우스트가 한 말이다. 이는 삶을 마감하기 직전 해에 탈고한 작품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려, 82세의 괴테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한 말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 비극 제1부에서 파우스트는 실수로 애인 그레트헨의 어머니와 오빠를 죽게 하고, 애인과 그 애인의 영아의 죽음을 방조한 죄인이었다. 그런 그가 제2부에서는 황제로부터 영지를 하사받아 간척지 개간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주를 반대하던 노부부가 불에 타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글의 제목은,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후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한 자신의 수하 메피스토 일당을 저주하고 난 뒤, ‘근심’에 사로잡힌 파우스트의 독백이다. 뒤늦게 ‘근심’의 수렁에 빠진 그는 결국 장님이 되어 자신의 무덤을 파는 소리를 간척사업을 마무리하는 작업인 것으로 착각한 채 죽음을 맞게 된다.

이 작품은 ‘비극’이라고 되어 있지만, 결국 주인공 파우스트는 구원을 받게 되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어서, 주인공의 삶은 비극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하긴, 뒤늦게나마 눈이 멀게 될 정도로 극심하게 자신의 과오를 뉘우칠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애인의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천상의 그레트헨을 죽은 뒤에나마 알아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뜨게 되었다는 점 등에 힘입어 구원을 받게 된 주인공 파우스트의 삶 자체는, 종교 차원에서 보면 당연히 비극이 아니다. 다만, 죽고 난 뒤의 구원이 아니라 지상의 삶을 중심에 두는 관점에서 보면 파우스트의 삶이 시력을 잃게 될 정도로 후회막심한 삶이었다는 점이 크게 부각된다.

괴테는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현실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현실성이 결여된 공상적 사회주의를 주창하여 마르크스와 엥겔스 등에 영향을 미친 ‘생시몽(Saint-Simon)’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의 기술을 총동원하여 현실을 개선해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시의 과학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색채론’을 써서 뉴턴을 반박하기도 했다.

주인공 파우스트의 ‘명령’에 따라 순진무구한 처녀 그레트헨을 꼬드겨내고 바다에서 해적질을 하여 자금을 확보하여 간척 사업을 진척시키는 메피스토는 바로 이 ‘기술’을 상징한다고 볼 수가 있다. 이 기술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된 파우스트가 실행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성급하게’ 명령을 내렸고 또 이 ‘기술’이 예상했던 것과 달리 ‘너무 성급하게’ 실행되어 의도하지 않은 불상사가 발생했던 것이다.

이렇듯 독일의 문호 괴테는 180여 년 전에 이미 기술만능주의의 문제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기술은 빠르고 쉽게 인간의 뜻을 실행한다. 이 기술이 잘못 쓰일 경우에는 그만큼 더 위험성도 커진다. 지금 우리는 기술을 기반으로 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 기술을 맹신한 나머지 앞뒤 가리지 않고 성급하게 부려먹다가는 괴테의 파우스트처럼 ‘근심’의 수렁에 빠져 현실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기 십상이다.

이는 생태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현대인들, 특히 살기 좋은 사회를 가꾸어가는 일꾼을 자청하여 선출된 모든 정치인들이 명심해야 할 사항이다. 선거 때만 자주 보이는 ‘특권세력’ 국회의원들은 물론, 지방행정을 책임 맡고 있는 자치단체장들도 정책을 정할 때 실현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임기가 끝난 뒤에도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정책을 신중하게 수립하여 그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진짜 정치인이 너무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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