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은 얼굴이다
간판은 얼굴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페이스북
  • 제주의뉴스
  • 제주여행
  • 네이버포스트
  • 카카오채널

박영희 수필가

오랜만에 칠성로에 갔다.

오랫동안 공사로 인해 상인은 물론 쇼핑객들도 많은 불편을 겪었었다. 완공된 거리는 몰라보게 변모했다.

허공을 어지럽혔던 전선의 지중화, 바닥에 돌을 깐 풍경이 유럽의 거리를 떠올리게 했다.

좁은 도로 양쪽으로 번갈아 그리던 차선으로 인해 누더기 같던 바닥 모습이 사라진 것도 좋았고, 무엇보다 차량 통행이 일절 금지된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말끔하게 단장 된 거리에 조형물까지 신선했다.

지척의 재래동문시장도 많은 지원과 투자로 예전보다 훨씬 장보기가 편해졌다.

내국인은 물론 외국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모습을 보면 내가 상인이 된 것처럼 흐뭇하다.

가끔 단조롭고 일률적인 붕어빵 간판에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왕이면 가게 물건의 특성을 살려, 재래시장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간판을 달았다면 좋지 않을까 하고. 간판은 바로 그 가게의 얼굴인데.

얼마 전 감성의 음악 도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다녀왔다.

아름다운 알프스 산에 둘러 싸인 잘츠부르크의 미라벨 궁전은 ‘사운드 오브 뮤직’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미라벨 궁전에서 멀지 않은 곳 게트라이데 거리는, 모차르트의 생가가 있는 곳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역사지구다.

문맹률이 높았던 중세시대 쉽게 물건을 구별할 수 있게, 그림이나 철제로 만든 조각이 간판 역할을 했다고 한다.

백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수제 우산에 구두, 등잔, 옷집이며 꽃가게까지. 다양한 아이디어로 개성을 살려 특이한 예술품으로 한몫 단단히 하고 있었다.

지금도 전통을 이어 간판을 만드는 장인이 따로 있을 정도다. 조그마한 간판이 관광 상품으로 볼거리가 된 거리다.

모차르트가 세례를 받은 성당에다 그걸 스토리텔링으로 엮어 세계인이 찾고 싶은 쇼핑거리로 거듭났다.

칠성로는 제주인의 아련한 향수가 깃든 상권의 중심지다. 옛 도심의 흔적과 생활상이 골목 곳곳에 남아 있다.

역사가 숨 쉬고 있는, 오늘날 제주의 밑뿌리가 된 곳이다. 한때 상권의 중심지가 도심공동화 현상으로 침체되기도 했으나, 여전 제주의 대표적인 거리로 꼽힌다.

원도심 재개발 사업이 추진 중이다. 바다를 조망할 수 있고 한라산을 올려다보는 나지막한 건물. 거기에 예술적 감각을 살린 섬 특성으로 명품 거리를 만들면 어떨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제주인들은 후세까지 물려줄 백년대계를 내다본 도시디자인 정책을 기대할 것이다.

칠성로는 제주항 여객터미널이 가깝다. 북쪽 바다를 품은 제주의 관문이나 다름없다. 걸어서 올 수 있는 거리에 크루즈의 기항지가 코앞이다. 관광객을 끌어들이자면 호기심을 자극하는 눈요기는 필수다.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 외는 고풍스러운 문화유적도 없는, 특별히 볼거리가 빈약한 게 제주 관광이다.

최근 지하상가가 새로운 단장에 들어갔다. 관덕정과 칠성로를 연결한 재래동문시장에 단순 쇼핑몰만이 아닌 새로운 볼거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계절이 바뀔 때마다 교보생명 건물에 걸리는 시 한 소절 같은, 그런 감성을 담은 상가의 간판이 내걸렸으면 하고 그려 본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