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난 집에 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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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방영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관광영어학과 / 논설위원

요즘의 여러 가지 상황 때문인지 사람들이 윤선도(尹善道, 1587~1671)의 글에 공감하면서 인용하는 것을 본다.

‘고산유고(孤山遺稿)’ 제5권에 나온다는 다음의 구절이 자주 보이는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현실이 비슷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라를 사랑하는 자는 원래 드문 법이고, 사람마다 자기 몸을 아끼지 않는 자는 없는 법’(애국자고선의 愛國者固鮮矣. 인막불애신 人莫不愛身)이라는 말과 그 내용이 다시 비유적으로 묘사된 부분이다.

‘큰 건물의 한 모퉁이에서 불길이 치솟았는데 마루에 둥지를 튼 제비는 여전히 편안히 여기면서 장차 화가 자기 몸에 미칠 줄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니, 이 또한 애달플 따름이라고 하겠다.’

인류 문명이 계속 지구를 착취한 결과 병들고 망가지는 환경 속에 멸종되는 생명체들이 늘고 있는데, 인간만은 별일 없이 번영할 것이라고 믿는다거나, 전체 국민의 안녕과 반대되는 방식으로 개인적 이득만 취하면서 행복할 수 있다고 여기는 태도는 불붙는 집 제비와 다를 바가 없다. 어느 시대나 이기심이 우리를 지배하지만, 그릇된 이기심이 빚는 피폐의 정도는 기술이 발달하고 삶이 다양해진 현 시대에 더욱 파장이 클 것이다.

우리 대다수가 물질의 유혹에 점령당해서 내적인 성장이나 영적 가치는 의미는 잃어버린 듯하다. 휘황한 조명 속에서 달이나 별빛을 잊고, 교묘하고 사악하게 마음을 쓰는 것이 점점 도를 넘고 있다. 그런 마음에 맞추는 듯 늘어나는 미세먼지가 세상을 덮고, 뿌연 하늘 아래 햇살은 흐려지고 중금속 먼지 속에서 우리들 눈도 흐릿해지고 있다.

살아있다는 것은 곧 돈을 벌어야 함을 뜻하니 거대 자본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약육강식의 정글 같은 사회에서 이제 인간의 도리나 연민의 정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봐야 할까. 수만 명의 노동으로 창출되는 부를 소수가 차지하며 사회적 책임의식을 잊어버리고, 열악한 작업 여건 속에서 기계문명의 틈바귀를 닦다가 그 속에 끼어서 사람들이 사라져도 현실의 흐름은 달라지는 것 없이 매사가 당연시 되는 것 같다.

인격 장애자들이 이처럼 많은 세상인가 할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 행위로 약자들이 고통 받고, 세상을 속이며 훔친 부를 축적하면서 자손 대대로 영화가 이어지길 꿈꾸는 자들이 휘두르는 현실, 이런 와중에 요구되는 기준에 맞추어 자신을 포장하려는 노력과, 주목 받아야 산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갈팡질팡하다가 삶은 닳아져서 버려진다.

불이 나도 모른 채 자신 속에 갇혀 있는 대청마루의 제비처럼 계속 무감각하게 살 여유가 우리에게 있을까. 재난을 예방하려는 노력이 아직도 우리에게 선택 사항이 될 수 있을까. 문득 사람들이 스님에게 문제 해결 방법을 묻는 방송이 떠오른다. 남편의 행동방식 때문에 가슴이 꽉 막힌다는 여인이 무슨 기도를 해야 남편이 달라질지 스님에게 물었는데 스님의 조언은 기도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부처님에게 기도하는 것보다 남편에게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 효과가 빠릅니다. 부처님보다 남편이 더 영험합니다.”

뜻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 모두의 각성과 온정이라는 뜻 같았다. 사실 온갖 일을 다 저지르는 주체가 사람들인데 어떤 신에게 해결해 달라고 하는 것은 모순일 것이다. 사람 스스로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데 무슨 수로 신이 돕겠는가. 서로 의지하고 최선을 다해 도우는 단순한 원칙의 실행만이 우리에게 살 길을 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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