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제주교육의 발상지 북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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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관을 교사로 활용해 도내 최초 학교 설립
▲ 옛 KT&G 제주본부 부지에서 영주관 객사 터가 발굴된 가운데 정밀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제주북초등학교 운동장 3분의 1이 포함되면서 복원 계획은 보류된 상태다.

제주교육의 발상지로 꼽히는 제주북초등학교는 제주관립보통학교라는 명칭으로 1907년 개교했다.

학교명은 여러 차례 바뀌었다. 제주공립심상소학교(1938년), 제주북공립초등학교(1941년), 제주북국민학교(1951년), 제주북초등학교(1996년)로 개칭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제는 1930년대 일본인 자녀들만 따로 다니던 초등교육기관의 명칭을 심상소학교라 불러왔다가 1941년 모두 초등학교로 통합, 개칭했다.

윤원구 제주군수는 신학문을 배운 인재를 많이 배출하는 데 역점을 뒀고, 영주관 객사를 수리해 학교로 이용했다.

재원은 조선정부가 일본은행에서 도입한 교육차관 500만원 가운데 8000원을 할애 받아 마련됐다.

제주관립보통학교 설립한 그는 초대 교장이 됐고, 1908년까지 군수와 교장을 겸직했다. 1910년 제1회 졸업생 26명이 배출됐다.

일제시대인 것을 감안해 대다수 교사는 일본인으로 초빙됐다. 교감 역시 일본이 맡으면서 학교 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1910년부터 광복 전까지 일본인 교장이 부임했다.

일제 치하에서 신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항일운동에 앞장섰다. 1919년 3월 조천만세운동의 주역인 김장환·김연배 지사가 이 학교를 졸업했다.

1920년 5월 25일 학생들은 관음사에서 열린 사월초파일 행사에 참석한 후 돌아오는 길에 기습적으로 ‘독립 만세’를 외쳤다.

한 세기에 걸쳐 제주교육 역사를 쓴 제주북초등학교는 1980년대 학급 수 50학급, 학생 수 3055명에 이르는 도내 최대의 초등학교로 위상을 떨치기도 했다.

제주주북초등학교는 2010년 도내 최초로 100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지난해까지 2만4590명이 졸업했다.

제주시는 2012년 1차에 이어 지난해 2차 발굴조사를 통해 왕권 통치의 중심지에서 근대교육의 효시가 된 영주관의 정확한 위치를 발견했다.

문화재청은 영주관 객사 터인 제주북초등교 동쪽에 있던 KT&G 제주본부 부지 2050㎡를 매입했다.
제주시는 제주목 관아 3차 정비사업 일환으로 올해 영주관 복원 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영주관 객사 터가 제주북초등학교 운동장 3분의 1를 차지하면서 복원 계획은 보류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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